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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금주의 사진] 난민생활에 지친 소년들의 낮잠

  • 2011.02.28
  • 조회수 : 7911

[금주의 사진] 파키스탄소녀 카티자

  • 2011.02.21
  • 조회수 : 8427

아이티, 1년 후의 이야기

  • 2011.01.31
  • 조회수 : 9030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콜롬비아 아이들

  • 2011.01.25
  • 조회수 : 12083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베냉의 아이들

  • 2010.11.15
  • 조회수 : 11439

스리랑카 딜루샤나 자매 이야기

  • 2010.10.29
  • 조회수 : 13171

파키스탄에서 온 편지

  • 2010.09.03
  • 조회수 : 7551

천막학교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소녀 안지타가 전하는 이야기

  • 2010.08.26
  • 조회수 : 11082

아이티 지진, 그 후 6개월…

  • 2010.07.20
  • 조회수 : 7532

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 2010.07.02
  • 조회수 : 11796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금주의 사진] 난민생활에 지친 소년들의 낮잠

코트디브아르 서부지역의 폭력사태로 고향을 탈출한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초등학교. 한 달 넘게 난민생활을 하느라 지친 두 소년이 운동장 구석 벤치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금주의 사진] 파키스탄소녀 카티자

파키스탄의 이재민소녀 카티자가 영양실조치료식을 얻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안고 있는 아기는 11개월된 여동생입니다.

아이티, 1년 후의 이야기

아직도 치우지 못한 엄청난 양의 잔해들. 사람들로 넘쳐나는 난민캠프, 보호가 필요한 수천 명의 어린이들과 전국으로 확산되는 질병 콜레라…지진이 발생한지 1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아이티에는 슬픈 광경들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티 복구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발생한 가장 비참한 사태였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회기반시설과 정부조직 등 국가적 인프라는 한 순간에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이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졌고, 후원의 손길도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그래도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이루어진 진전과 개선이 없었더라면 훨씬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8백만 리터 이상의 깨끗한 물을 난민촌에 제공했으며, 영양실조 치료식을 공급해 어린이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2백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예방접종을 해 주었고, 가족과 헤어진 어린이 수천 명에게 가족을 찾아 주었습니다. 현재 약 10만 명의 어린이들이 유니세프가 만든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학교 보내기 캠페인을 통해 지진으로 피해 입은 어린이 80%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국가적인 재앙이 일어났을 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은 쉽지만 좋은 일을 하는 영웅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아이티를 위해 헌신한 작은 영웅들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구조전문가이며,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인 마리 씨는 지진 발생 직후부터 학교를 짓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바치고 있습니다.마리 씨는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한 세대를 통째로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아이티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한 프뢰레 씨. 그는 난민들이 모여있는 지역마다 깨끗한 식수를 공급해 주고 있으며,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지진 당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겨우 목숨을 건진 마우베트 씨는 포르토프랭스에서 간호사이자 강사로 활동합니다. 그녀는 현재 신생아 전문보건소에서 일하며 위험에 처한 수많은 신생아의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린 영웅도 있습니다. 15세 소녀 쥬디스는 어머니를 잃고 집도 잃었지만 희망의 끈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현재 8명의 친척들과 한 방에서 생활하는 쥬디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교수업을 받기 위해 매일 두 시간 넘게 걸어서 통학을 합니다. 쥬디스는 자신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속삭임이 들려요. 그래도 계속 가야 한다고요.”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열심히 했는데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주저앉아 버리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도움이 간절한 어린이들과 아이티 복구를 위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작은 영웅들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여전히 이곳은 지진의 잔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콜레라가 창궐하고, 정치상황이 혼란스러운 땅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잔해들을 보지 말고, 그 너머에 있을 미래를 보십시오. 지금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하는 아이티를 꿈꾸며 한 발짝 더 멀리 내딛어야 할 때입니다.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콜롬비아 아이들

콜롬비아의 여덟 살 소년 카를로스는 메델린 시의 쓰레기장 주변 슬럼가에서 삽니다. 얼마 전까지는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카를로스의 일상은 끔찍한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며칠 전 바라코(불법무장단체 조직원)들이 저 쪽에서 한 남자를 죽이는 걸 봤어요. 피를 흘리는 남자를 그냥 저기에 버리고 가버렸죠.” 살인을 목격하는 일은 카를로스에게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살인과 약탈, 방화 등 크고 작은 폭력들이 어린 카를로스의 눈 앞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는 지난 40년간 분쟁과 지진, 허리케인, 대홍수,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로 고통을 겪은 나라입니다. 끊임없는 재앙으로 국가의 사회기반시설은 취약해지고 불법 마약거래와 고질적인 폭력사태가 기승을 부리는 땅이기도 합니다. 유니세프 콜롬비아사무소의 폴 마틴 대표는 “콜롬비아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폭력입니다. 가정과 학교, 거리를 가리지 않고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유엔고등난민판무관에 따르면 콜롬비아는 국내 난민 수가 3백 만 명으로 수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내 난민 수가 많은 곳입니다. 이라크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불법무장세력들이 끊임 없이 일으키는 폭력은 콜롬비아를 이끌어갈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카를로스는 그나마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거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해질 무렵 메델린 중심가 니키타오 거리에서 저녁이 되면 본드를 마시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폭력사태로 부모나 집을 잃은 아이들로 또래 친구들과 거리에서 먹고 자며 살아갑니다.“우린 돈이 필요해요. 우리를 돌봐줄 부모님이 없으니까요.” 본드가 가득 든 비닐봉지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앳된 얼굴의 소녀 모니카가 얘기합니다. 모니카 옆에는 이미 본드에 취해 눈의 초점이 흐려진 카타리나가 앉아 있습니다. 두 소녀 모두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간에 그만 두었습니다. 학교 이야기를 하자 모니카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듯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러한 어린이들을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 콜롬비아 메델린 시는 ‘에스꾸엘라 부스까 니뇨(Escuela Busca Niño;EBN)’ 는 ‘학생을 찾습니다’ 또는 ‘어린이를 찾아가는 학교’라는 뜻의 교육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이를 지원함으로써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캠페인 운영자 클라라 세르나는 “우리는 마을들을 방문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거리에서도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이들의 상황을 평가하고, 왜 학교에 가지 않는지 가족들과 면담을 합니다. 원인을 찾은 후 아이들의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지요. 이 캠페인은 학교에 아이들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아이들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정부와 각 협력단체들이 긴밀하게 협력한 결과 이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다른 지역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카를로스도 EBN 캠페인 덕분에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메델린 시청은 도움이 필요한 거리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하는 특별한 팀도 운영합니다. 이들은 어린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훈련 받은 사회복지사와 심리학자, 특수경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니카와 카타리나도 이 캠페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회복지사가 거리를 떠도는 두 소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묻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회복지사와의 긴 상담 끝에 모니카와 카타리나는 눈물을 떨구었고 시청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모니카와 카타리나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BN은 콜롬비아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입니다. 폭력과 재앙이 난무하는 콜롬비아에 희망을 가지고 유일한 빛은 어린이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대표는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합니다. 교육을 통해 콜롬비아는 폭력과자연재해라는 부정적인 기운들을 극복할 에너지를 얻습니다.”글> 가브리엘 갈라넥 (유니세프본부 개발전문 컨설턴트)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베냉의 아이들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베냉의 아이들   서부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베냉의 한 마을. 부모가 죽어가는 어린 딸을 안고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습니다. 팔다리가 늘어져 눈조차 뜨지 못하는 아기는 생후 20개월된 파오지아. 영양실조 진단을 받은 파오지아는 언뜻 보기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앙상하게 야위어 있었습니다. 파오지아의 부모는 말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에게 옥수수죽을 먹였는데 왜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무엇이 파오지아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을까요?     파오지아의 부모는 어린 딸에게 오직 자신들이 수확한 옥수수만을 먹였습니다. 그 때문에 파오지아는 20개월이 될 때까지 옥수수에 포함된 영양소 외에 어떤 영양소도 섭취할 수가 없었지요. 부모의 무지 때문에 아기의 생명이 위험해진 것입니다. 베냉에서는 이처럼 부모나 주민들의 잘못된 문화적 관습이나 식생활에 대한 무지로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 중 많은 수가 생명을 잃습니다. 어린이 1천명 중 120명 이상이 다섯번 째 생일을 맞기 전에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어린이 5명 중 1명은 영양부족으로 인한 저체중아이며, 나이에 비해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어린이비율도 38%나 됩니다.   베냉의 북부 아리보리 지역 곰파로 보건소에서 일하는 보건요원 리나타 씨는 베냉 어린이들의 영양실태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메마른 북부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엄마가 자녀의 성장발육에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잘못된 문화적 편견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달걀을 많이 먹으면 커서 도둑이 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거나, 남녀차별이 심해 남자들이 고기를 사오면 부인이나 자녀들은 고기 한 점도 못 먹는다는 겁니다.”  이러한 잘못된 오랜 관습으로 지금 당장은 어린이들에게 뚜렷한 변화를 찾아볼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리 무언가를 먹여도 점점 어린이들이 말라가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죽음에 이르는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영양실조는 태아 때부터 시작되며, 한 번 걸리면 돌이키기 어려운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900만 명에 달하는 베냉의 국민들은 50개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영양교육을 실시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유니세프는 베냉의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영양실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14개의 의료보건소와 협력해 자원봉사자와 보건요원들이이 직접 가정과 마을을 방문해 올바른 영양섭취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3년 동안 아리보리 지역에서만 약 7천 명의 아이들이 심각한 영양실조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아이가 주술이나 귀신에 씌웠다고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부모들도 이제는 보건요원들에게 상담을 하고, 아이가 조금 아프다 싶으면 보건소에 데려옵니다. 제대로 걷지조차 못했던 6킬로그램의 영양실조 아기 파오지아는 유니세프가 제공한 영양실조치료식을 먹고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몸무게도 많이 늘었습니다. 앞으로는 아이에게 음식을 골고루 먹일 거라고 다짐하는 파오지아의 부모는 두 다리로 병원 마당을 혼자서 걸어다니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밝게 웃습니다.   베냉은 어떤 나라일까요? ◾ 인구 886만 명 ◾ 1인당 GDP 750불 ◾ 하루 1.25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극빈층 47% ◾ 5세 미만 사망률 1,000명당 121명 ◾ 초등학교 입학률 67% (입학한 어린이 중 절반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 ◾ 저체중아 비율 23% ◾ 어린이 발육부진율 38%

스리랑카 딜루샤나 자매 이야기

스리랑카 동부의 외딴 마을에서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8살 딜루샤나와 11살 다누시하 자매도 선생님이 칠판에 써준 문장을 열심히 따라 읽습니다. 오랜 내전과 쓰나미로 폐허가 된 학교들이 최근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새롭게 문을 열게 되면서 마을은 공부하려는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차 있습니다.딜루샤나는 바띠깔로아의 칼쿠다에 세워진 임시교육시설 바다무나이 타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 학생들은 20년 이상 지속된 내전과 폭력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없습니다. 마을이 한번 내전의 표적이 되면 물도 식량도 끊긴 채 완전히 고립되어 초토화되고 맙니다. 그리고 수많은 힘없는 어린이들이 무참히 희생됩니다. 게다가 6년 전에는 쓰나미가 덮쳐  3만 5천 명의 희생자와 4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바람에 나라는 더욱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딜루샤나 자매는 내전 중에 엄마를 잃었습니다. 엄마는 군인들에게 성폭행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재혼한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웃이나 친척들이 가끔 아이들을 보러 오지만 어린 자매는 오직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자매가 하루 온종일 먹는 음식이라곤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학교에도 가지 못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 갈대를 줍느라 수업을 종종 빠지기 때문이지요.그래도 딜루샤나는 의지할 수 있는 언니가 늘 함께 있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언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줘요. 제 옷도 빨아주고, 숙제도 도와주고, 씻는 것도 도와줘요. 그리고 제 긴 머리를 이렇게 예쁘게 땋아준답니다.”딜루샤나 자매처럼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내전이 남기고 간 상처로 여전히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주는 유일한 곳은 임시학교입니다. 스리랑카 내전지역에서 긴급구호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쳐온 유니세프는 내전이 어느 정도 종결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 스리랑카사무소의 교육담당자인 브렌다 하이프리크는 말합니다.“황폐화된 마을을 재건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일터를 가꾸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특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 보건과 위생, 아동보호 등에 대한 정보를 가족에게 전하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좀더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스리랑카 전역에 마련된 임시학교들이 중간에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학교와 주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1년 전 다시 문을 연 팅기리바다이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학교운동장을 청소합니다.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학생들은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학구열을 불태우며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오늘 딜루샤나와 다누시하 자매는 학교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딜루샤나는 길을 걸으면서 언니에게 속삭입니다.“내일도 오늘처럼 맛있는 점심을 먹고 언니와 열심히 푼 숙제를 선생님께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

파키스탄에서 온 편지

이 글은 파키스탄 홍수피해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다니엘 툴 유니세프 남아시아지역사무소 대표가 CNN을 통해 전한 내용입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늘 당장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세계에 전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근해에서 유입된 거대한 물줄기가 온 땅을 뒤덮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비슷한 재앙이 떠올랐고, 그 때와는 반응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피해 정도나 주민들이 겪는 고통도 그 때와 똑같은데 이번에는 홍수 피해자들을 돕고자 하는 절박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키 큰 나무에 근근이 달린 가지들만이 어쩌다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봇대도 물 아래 잠겨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피신해 있을까? 수면 위로 겨우 떠올라 있는 자투리땅에 삼삼오오 고립되어 있는 가족들이 보인다.파키스탄 땅 5분의 1이 아직도 물 속에 잠겨 있다. 농작물과 시장, 도로, 학교와 마을, 가족들이모여살던 집까지 모두 씻겨 내려갔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십 년간 구호활동에 매진해왔지만, 이번 홍수사태만큼 처참하고 암담한 현실은 본 적이 없다.몇 년 전 일어난 쓰나미는 이번 홍수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 파괴력은 비슷했었다. 쓰나미가 아시아를 강타한 직후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엄청난 재해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후원금은 올바르게 사용될까? 유엔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단체들이 제대로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을까?  지구촌의 여론은 뜨겁게 들끓었다.이러한 의문들은 쓰나미의 처참한 현장이 생방송 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모두 사라졌다. 엄청난 물결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지금 쓰나미가 관통한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정부와 인도주의단체들은 쓰나미 이전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절망 밖에 남지 않았던 땅에는희망의 기운이 가득하다.파키스탄도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홍수사태를 지켜보는 주변국들의 반응은 너무도 잠잠하다. 약 2천만 명의 파키스탄 주민이 피해를 입었으며, 이 중 8백만 명 이상이 18세 미만 어린이다. 이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4백만 명의 어린이는 홍역과 소아마비를 비롯해 치명적인 수인성질병인 세균성 이질과 설사, 콜레라의 위험 앞에 놓여 있다.이재민수용소에서 한 엄마를 만났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파리떼 속에서 무려 다섯 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몸에 걸친 옷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는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내 얼굴과 몸에서도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녀는 심한 설사로 고생하고 있었고, 아이들도 모두 몸이 아픈 상태였다. 단지 천막 하나를 보호막으로 사는 그녀와 아이들이 이 더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비가 또 내린다면 어떻게 견뎌낼까?  이번 홍수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은 5백만 명에 육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피부병 그리고 호흡기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물이 조금씩 빠져나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집도, 곡식도, 가축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이재민수용소에서는 그래도 많은 지원이 이루어진다. 유니세프는 매일 2백만 명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있으며, 약 80만 명의 어린이에게 이미 예방접종을 실시했다.하지만 여전히 의료진이 부족하고 구조를 위한 헬리콥터도 부족하다. 이재민을 위한 비누와 물통 등도 필요하지만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이다. 나는 파키스탄인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지난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때 볼 수 있었다. 구호활동가들은 쉬지 않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들에게 음식과 깨끗한 물, 의약품, 천막 등을 나누어 주었으며, 현지 주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었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앞다투어 인명구조에 나섰고,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다친 몸과 마음을 밤낮으로 치료했다.지구촌사람들 역시 이러한 인류애를 끊임없이 실천해왔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을 기억하는가? 세계적인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아이티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이번 대참사는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국경을 넘어선 재앙이다. 우리 모두 지구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인류이자 형제이다. 파키스탄 인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나누듯이 우리도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금 손을 내밀자. 오늘이 아니면 너무 늦다.""</a

천막학교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소녀 안지타가 전하는 이야기

마다가스카르의 아홉 살 소녀인 안지타는 마롤론도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지난 3월 마을을 휩쓸고간 태풍으로 교실이 사라진 뒤로는 계속 천막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 학기의 첫날입니다.  태풍으로 집을 잃다"이제 저도 3학년이 되었어요. 새 학년이 된 것은 좋지만 올해에도 천막 안에서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요. 태풍이 오기 전에는 번듯한 교실에서 공부했었거든요. 저는 태풍이 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태풍으로 집이 무너졌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요. 다행히도 태풍이 왔을 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했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은 가족은 없어요. 할아버지 집은 우리집보다 훨씬 튼튼해서 무너지진 않았지만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무서웠어요. 태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어요. 그 때 제가 본 광경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집도, 나무도 모두 태풍에 쓰러져 있었죠. 망고 열매들은 나무에서 모두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어요. 저는 재빨리 달려가 담을 수 있을 만큼 망고를 가져왔고 가족 모두가 맛있게 나눠 먹었어요."그러나 망고를 얻은 기쁨도 잠시 안지`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안지타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평평한 집터만 남아있을 뿐 지붕도 날아가고, 기둥도 뽑혀 없어진 것입니다..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못쓰게 되었죠. 접시와 냄비도 모두 사라져 밥을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옷은 모두 비에 젖어 넝마가 되었어요. 어린 제 여동생은 하염없이 울었어요. 부모님은 소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려고 서둘러 숲으로 들어가셨어요. 하지만 소들은 대부분 죽어 있었어요. 태풍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몹쓸 짓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울지 않고 용기 있게 참았어요. 유니세프가 천막학교를 만들다부서진 잔해를 모두 치운 뒤 안지타의 부모는 숲에서 가져온 나뭇가지와 대나무로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안지타는 친구들을 만나려고 학교에 갔지만 다시 찾은 학교에 안지타가 공부하던 교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학교건물이 서 있던 곳은 공터가 되어 있었고, 벽돌로 지은 단 한 개의 교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선생님들은 많은 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개 남은 교실에 대나무 기둥을 세워 교실을 나누었어요. 그러니까 소리가 섞여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나중에는 전학년이 같은 교실을 쓰면서 날짜와 시간을 구분해 수업을 받았어요. 수업시간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저는 다시 학교를 갈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그러던 중 유니세프가 어린이들을 위해 천막교실을 지어주었습니다. 비록 천막이지만 공간이 훨씬 넓어져 학년별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유니세프가 우리를 위해 천막교실을 만들어 주어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자 천막이 찢어지고 말았죠. 비 오는 날엔 구멍으로 비가 새기도 했구요. 유니세프는 곧 새 천막으로 교실을 바꿔 주었어요. 지금까지 우리 교실은 잘 버텨주고 있어요. 솔직히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너무 더워서 집중하기 어렵거든요. 더위에 못 이겨 수업을 듣다가 그대로 잠들 때도 있답니다."예쁜 교실이 많이 있는 학교, 태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학교를 꿈꾸는 안지타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더위를 견디며 천막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지진, 그 후 6개월…

아이티에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 처참하게 파괴되었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 아이티사무소 프랑소와즈 그룰루스 대표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합니다.“모든 사회기반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우려했던 대량 영양실조 사태나 큰 질병에 대한 발병률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잃은 많은 주민들이 이곳 난민촌에서 조금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안전한 식수를 마시고,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의 지원으로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는 등 유니세프와 협력단체들의 노력으로 내일을 위한 힘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아이티국제공항 근처의 난민촌에 자리잡은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UNICEF-supported ‘baby-friendly tent’)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들에게 치료와 영양 그리고 엄마와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생후 6개월까지 반드시 모유수유를 하도록 권장해 아기들의 면역력 증강과 성장을 위한 상담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5개월이 된 사브리나 미쉘(Sabrina Michel)은 지진 발생 직후에 태어났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았던 사브리나의 생모는 아이를 낳은 지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현재 사브리나는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에서 5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모인 베아트리스 테라느(Beatrice Terane)의 돌봄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베아트리스는 지진으로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녀가 다니던 섬유공장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자신의 아들과 사브리나까지 돌봐야 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어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두 아이를 기르는 거예요.”  약 2만3천명의 어머니들과 아기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고 있는 107개의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신생아 3,000여 명은 이곳에서 충분한 분유를 제공받으며 오늘도 안전하고, 아늑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밖에 유니세프는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1천3백 개의 천막 임시학교를 만들었고, 추가로 2천 개를 더 마련할 예정입니다. 또 위생보호를 위해 9천 개의 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지진으로 가족들과 흩어진 아이들을 구출하는 등 아동보호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2만 3천 명의 어머니와 아기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고 있는 107개의 ‘아기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생활합니다. 그 중 많은 아기들이 사브리나처럼 지진 발생 후 태어났습니다. 아기들은 이 공간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티를 건설하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삼촌이 발다를 입양하겠다고 엄마에게 얘기를 꺼낸 건 발다가 막 네 살이 됐을 때입니다. 발다는 세네갈 남부에서 엄마, 아빠, 여동생 콜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발다의 부모는 삼촌의 제안에 동의했고, 어린 발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그러나 삼촌은 발다를 키울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바로 발다를 다카의 마라부츠에게 보냈습니다. 마라부츠란 이슬람교 안에서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는 종교적 지도자, 교사 등을 의미합니다. 전체 인구의 94%가 이슬람교인 세네갈에서 마라부츠의 권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마라부츠 중엔 코란 학교를 운영하는 자도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도 종교학습을 위해 이 곳에 오기도 합니다. 발다의 삼촌도 수도 다카에 있는 학교 중 한 곳에 발다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발다가 간 학교의 마라부츠는 종교를 가르쳐 주는 대신 발다와 또래 아이들에게 거리로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했습니다. 발다는 번잡하고 지저분한 다카의 거리에서 빨간 깡통을 매고 몇 시간씩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해야만 했습니다. 마라부츠는 아이들에게 하루에 벌어와야 할 할당량까지 정해 주었습니다. 보통 300~500 세파프랑(1천 원 정도)였는데 행인들은 구걸하기에 너무 어린 발다를 가엾게 여겨 쉽게 돈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몫을 대부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구걸을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되는 날,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온 발다에게 마라부츠는 한 번만 더 할당량을 못 채우면 매질을 할거라며 무섭게 협박했습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발다는 마라부츠가 너무 무서웠고, 그날 밤 학교를 도망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발다의 집은 거리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돈과 음식을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 가족과 헤어진 발다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픈 적도 있었고,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지만 약을 먹거나 발라본 적은 없습니다. 상처가 나면 버려진 배터리 가루를 빻아 바르곤 했습니다. 발다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은 상처나 병을 치료하는데 그 방법이 최고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발다가 열 네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발다는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족이있는 따뜻한 가정은 아니지만 안전한 머물 곳을 찾은 것입니다. ‘어린이제국’이란 이름의 아동보호소가 바로 그 곳입니다.  다카 시내에 있는 하얀 건물은 발다와 같이 마라부츠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에서 살아가던 어린이 28명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유니세프는 마라부츠로부터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이 다카에만 1만 명, 전국에는 10만 명이라고 추정합니다. “이제 다시는 거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거리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이 곳에는 비숫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 주니까 너무 좋아요.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찾게 되겠죠?”그렇게 말하며 발다의 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맺혀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현재 세네갈에서 ‘어린이제국’ 운영자 및 다른 파트너들과 협력해 마라부츠로부터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글) 록산나 로캇 유니세프세네갈사무소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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