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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 이집트의 네르민 남매

  • 2007.03.27
  • 조회수 : 8533

그루지야의 작은 참새- 리카와 나티아

  • 2007.02.22
  • 조회수 : 8749

미래의 헤어 디자이너, 토고의 코코

  • 2007.02.12
  • 조회수 : 7895

인도네시아 소녀 모리의 희망 일기

  • 2007.01.23
  • 조회수 : 8800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 이집트의 네르민 남매

16살 네르민과 남동생, 모하메드가 살고 있는 곳은 이집트 카르무즈 (Karmouz)의 노동자 도시 알렉산드리아입니다. 낡은 건물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네르민과 모하메드의 보금자리인 작은 아파트가 나옵니다. 남매의 어머니는 어릴 적 세상을 떴고, 4년 전엔 아버지마저 병으로 사망해 네르민과 모하메드 단 둘이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아가 되자 남매의 현실은 더 고되고 힘겨워졌습니다. 이집트 제 2의 도시, 카르무즈에는 빈곤과 가족 해체로 극빈 상황에 내몰리는 어린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 거리의 아이들로 전락하거나 여러가지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는 아이들이 많지만 네르민과 모하메드는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밝은 봄 기운이 스며 있는 네르민과 모하메드의 보금자리는 어린 남매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작은 아파트는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침대와 부엌도 먼지 한 점 없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습니다. 거실 벽에는 레바논 팝스타의 미소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네르민은 찾아온 손님을 위해 차를 끓이느라 분주합니다. 차 준비를 끝낸 뒤 자신에게 닥친어려운 위기들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 미래에 대한 걱정스런 눈빛의 네르민 ⓒ Claudia Wiens / UNICEF Egypt) "처음엔 혼자 잠 자는 것조차 무서웠어요. 하지만 곧 익숙해졌죠.” 네르민은 방 안을 둘러보면서 얘기합니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야 하는 위기도 겪었지만 이제 그 어두운 기억은 희미해졌습니다. "운 좋게도 저와 동생은 협회의 도움을 받아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네르민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떠오릅니다. 네르민이 말하는 협회는 Sidi Ali El Sammak Society라는 NGO를 말합니다. 이 NGO는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운영되며 알렉산드리아의 극빈층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 돌아가신 네르민의 부모님 사진 ⓒ Claudia Wiens / UNICEF Egypt) 이집트에선 첫 사례였던 3년 프로젝트의 이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고 있으며 각 가정의 어린이 상황을 체크해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관련 NGO가 개입합니다. 네르민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메르바트는 채소상이었던 네르민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던 2003년부터 남매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네르민의 아버지가 죽은 후, 저희는 주변에 돌보아줄 친척이 있는 지부터 찾아봤습니다. 당시 남매는 스스로 살아갈 방법이 전혀 없었고, 학교를 중퇴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으니까요.” 메르바트는 당시 상황을 그렇게 회고합니다. 현재 협회는 네르민과 모하메드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협회의 도움으로 네르민은 서기 일을 배우고 있으며 모하메드는 목수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협회는 학비뿐 아니라, 새는 아파트 지붕을 보수해 주고, 침구도 지원합니다. 메르바트는 네르민과 모하메드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메르바트와 같은 사회복지사는 남매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서 네르민 남매 같은 상황은 너무나 흔한 경우라고 얘기합니다. "각 가정을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고 질문지를 준 후, 그들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봅니다. NGO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최대한 찾아봅니다. 지원을 할 때는 직접 어린이에게 하거나, 가족을 통해서 합니다." "우리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시를 찾은 유니세프 이집트사무소 대표 마논코트 박사는 말합니다. "저처럼 어려운 상황에 빠진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우릴 도와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걸 아는 거에요." 유니세프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네르민의 의미 있는 한 마디입니다.

그루지야의 작은 참새- 리카와 나티아

"집에서 살 때 저는 너무 불행했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전 이 곳이 좋아요. 여기에선 아무도 저에게 상처주지 않거든요." 올해 15살이 된 리카를 처음 만난 곳은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스패로우 홈 (Sparrow Home)''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참새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곳에서 리카는 자신처럼 폭력과 학대를 피해 가출한 뒤 거리에서 살았던 어린이 50여 명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독립국이 된 그루지야는 다른 연방국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빈곤이 심화되면서 거리의 어린이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스패로우 홈''은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학대와 폭력 없는 따뜻한 가정을 선물해 주기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의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 옷가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와 교육받을 기회도 제공해 줍니다. 어린이들은 이 곳에서 춤과 연극, 그림 수업 등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들의 소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폭력과 학대로 상처 받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스패로우 홈에 들어와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회복됩니다. (← 미술치료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리카. ⓒ UNICEF Georgia) 7년째 이 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나나 원장은 말합니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여기에 옵니다. 그루지야에는 현재 이런 아이들이 6천명 넘게 있습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우리는 아이들이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정서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도록 도와 주는 일이 중요하지요." 정부가 무상지원한 ''스패로우 홈''건물은 트빌리시에서 가장 낡은 건물이지만 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은 이 곳이 잘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지난 4년간 스패로우 홈의 어린이 교육사업을 특별히 지원해 왔으며 거리의 어린이를 비롯한 어려운 상황의 어린이 보호를 위한 복지정책을 정부와 함께 개선해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리카 또한 아직 악몽을 모두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미래의 꿈을 물어보자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대답합니다. "제 꿈이요? 글쎄요.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지금은 동생이 이 곳에 와서 함께 사는 거. 그냥 그게 꿈이에요" 어린이들의 행복한 재잘거림과 노랫소리 가득한 스패로우 홈의 마당에서 만난 14세 소녀 나디아는 더 행복한 모습입니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모두 이겨낸 듯 공공보호시설에서 지낸 경험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합니다. (→ 유니세프 직원들을 쫓아 다니며 노래를 불러줬던 밝은 미소의 나티아. ⓒ UNICEF Georgia) "전에 있던 곳은 여기처럼 자유롭지 않았어요. 마당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선 제가 원하는 건 모두 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집처럼 자유로워요. 전 친구들과 놀거나 노래 부르는 게 좋아요. 컴퓨터도 재미있고요." ''스패로우 홈''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처음 들어온 아이들이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왜 ''스패로우''냐고 묻자 나티아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참새처럼 느끼거든요." 그리곤 이 곳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스패로우 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참새라고 불리는 새가 있어요. 머리를 가릴 지붕조차 없지만 음식을 건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죠.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아요. 원하는 곳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아무도 그들을 새장에 가둘 순 없죠.''참새의 지저귐을 닮은 나티아의 노랫소리가 마당 가득히 울려 퍼집니다.

미래의 헤어 디자이너, 토고의 코코

아프리카 서부의 기니 만 연안에 위치한 토고의 조용한 마을, 아네호에는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17세 소년, 코코가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작고 한가로운 마을이지만, 이곳에 평화가 오기까지 토고인들의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2년 전인 2005년 4월 38년간 토고를 장기 집권했던 독재자 그나싱베 에야데마 대통령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파우레 그나싱베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온 나라가 폭력 사태에 휩싸였습니다. 대를 이은 독재에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거리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했고 군대를 비롯해 집권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폭력조직들이 최루탄과 무기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약탈과 폭력이 이어졌고 이러한 과정에서 적어도 60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결국 선거결과가 발표되고 1주일 만에 1만 8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인 가나와 베냉으로 탈출했습니다. 난민의 무리 속 에는 소년 코코도 있었습니다. “폭력사태가 발생하던 날, 저는 미용실에 있었어요. 대통령 선거결과가 발표되자 마자 여기 저기서 총소리가 났어요. 집으로 가려고 미용실을 빠져 나왔더니 이미 거리에는 총을 든 사람들이 잔뜩 있었고 그들은 내 편, 네 편도 없이 아무 곳에나 총을 쏘아대고 있었어요. 마치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았죠. 무서워서 집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가족들 생각이 났지만 죽음의 두려움이 더 컸지요.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강을 헤엄쳐 건넜어요. 그리고 도망친 다른 난민들과 함께 이 곳 베냉으로 왔어요.” 베냉에는 코코처럼 부모 없이 탈출한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난민 캠프가 있습니다. “국경을 넘자 유니세프 직원들은 저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봤어요. 제가 누구이며, 왜 탈출했는지. 주소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곤 제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함께 머무를 텐트를 보여 주었어요. 저는 주소를 말하지 않았어요. 토고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거든요” 코코는 그 때부터 난민촌인 콤 캠프 (Come Camp)에 머무르며 여유로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난민 캠프에선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잘 먹고, 제가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친구들과 어울리며 잘 지냈어요. 미용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구요.” 난민캠프에 머무르는 많은 아이들이 코코와 마찬가지로 토고로 돌아가기 싫어했습니다. 유니세프 난민캠프의 직원 크리스챤 미차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던 아이들이 이 곳에서 잘 먹고, 잘 입고 편하게 지내다 보면 캠프를 떠나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유니세프는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희망을 키워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난민 캠프에서 구호품에 의존해서 계속 지내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옳지 않으니까요. 고향의 상황이 안정되면 당연히 돌아가 본연의 인생을 살아야지요” 얼마 후 코코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유니세프 직원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고향집 주소를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니세프는 수소문 끝에 코코의 가족들을 찾아 주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후 다시 미용실에서 헤어 디자이너 견습생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 코코는 캠프를 떠날 때 유니세프가 준 미용기구 세트를 보물 1호로 여깁니다. (← 손님의 머리를 만져 주고 있는 코코 / Photo credit: Lorho/UNICEF Bénin) 아네호 미용실에서 일한 지 9개월이 흐른 지금, 코코는 미용실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견습생으로 통합니다. 유니세프가 정기적으로 난민캠프 출신 아이들의 생 활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게 된 코코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건강한 소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하세요. 곧 훌륭한 헤어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구요.” 지금 토고의 작은 마을, 아네호에는 미래의 일류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코코가 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소녀 모리의 희망 일기

인도네시아 해안 지역 칼랑의 이른 아침. 열살 안팎의 어린 소녀들이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걸어갑니다. “학교에 가는 길이에요. 저는 학교 가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술 시간이 제일 기다려져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것도 즐겁고요. ” 얼마 전 칼랑에 새로 완공된 캄퐁 바로(Kampong Baro)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한 살 소녀 모리가 까르르 웃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학교 자랑을 합니다. (←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받고 있는 모리, ⓒ UNICEF Indonesia/2006/Josh Estey) 지금은 해맑게 웃고 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모리는 웃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2년 전 인도네시아 해안 지역을 휩쓸고 간 쓰나미가 모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모리가 살던 칼랑의 마을은 쓰나미 피해가 가장 컸던 수마트라의 서쪽 해안 지역입니다. 당시 이 지역 주민의 4분의 1이 생명을 잃었고, 4만 명이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모리는 순식간에 몰려온 해일로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습니다. 집과 학교, 놀이터도 잃었습니다. 사고가 있은 지 2년이 흐른 지금도 아빠는 여전히 실종된 상태입니다. 아빠 대신 생계를 떠맡게 된 스물 여섯 살의 젊은 엄마는 남의 집 빨래를 해 주고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어린 남동생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희망을 잃었던 모리가 웃음을 되찾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한 달 전 모리가 살고 있는 곳에 새 학교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Child- Friendly UNICEF School)’입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유니세프가 세워준 임시텐트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이제 지진이나 해일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니세프는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로 부서진 학교들을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이미 4개의 학교가 완공되었고, 35개교는 건설 중에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에는 튼튼한 건물뿐 아니라, 남녀별 화장실과 식수 시설도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어린이들은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텐트교실에서는 여러 학년이 같이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의 수업하는 내용이나 다른 반 아이들의 말소리가 다 들렸어요. 이제 우리 반만 따로 공부하게 되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모리는 수업시간이 더 즐겁고 집중도 잘 된다고 말합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쓰나미로 충격에 빠져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답니다.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한꺼번에 잃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학교가 복구되고, 학교 시설이 하나씩 개선되면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이제는 수업시간에도 활발하게 발표도 잘 하고, 잘 웃고, 잘 뛰어 놀고 자기 표현도 다양하게 합니다.” (← 새로 지어진 모리의 학교, ⓒ UNICEF Indonesia/2006/Josh Estey) 캄퐁 바로의 교장선생님인 무하마드 알리 씨는 덧붙입니다.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정을 밝게 만듭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가 들어서면서 동네 전체가 밝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지 우리 모두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답니다.” 칼랑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쓰나미 이후 웃음을 잃었던 마을 주민 전체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웃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밝은 미래이며,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던 부모들도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에 와본 후에는 선뜻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마을을 떠났던 교사들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 덕분에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의 학교 등록률과 출석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쓰나미의 상흔은 아직도 인도네시아 구석구석에 남아 있지만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리와 같은 어린이들이 있기에 인도네시아는 상처를 이겨내고 희망을 되찾을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운 한낮.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간 모리는 책가방을 놓고 친구들과 함께 강으로 나갑니다. 물은 모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이제 더 이상 모리는 물이 두렵지 않습니다. 수영을 하기 위해 강 속으로 철벅철벅 들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더 이상 쓰나미의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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