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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콜롬비아 아이들

  • 2011.01.25
  • 조회수 : 12236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베냉의 아이들

  • 2010.11.15
  • 조회수 : 11599

스리랑카 딜루샤나 자매 이야기

  • 2010.10.29
  • 조회수 : 13338

파키스탄에서 온 편지

  • 2010.09.03
  • 조회수 : 7691

천막학교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소녀 안지타가 전하는 이야기

  • 2010.08.26
  • 조회수 : 11183

아이티 지진, 그 후 6개월…

  • 2010.07.20
  • 조회수 : 7664

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 2010.07.02
  • 조회수 : 11908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 2010.06.15
  • 조회수 : 6874

아이티 소녀 쥬디스의 꿈

  • 2010.05.25
  • 조회수 : 11177

4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 2010.04.20
  • 조회수 : 7885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콜롬비아 아이들

콜롬비아의 여덟 살 소년 카를로스는 메델린 시의 쓰레기장 주변 슬럼가에서 삽니다. 얼마 전까지는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카를로스의 일상은 끔찍한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며칠 전 바라코(불법무장단체 조직원)들이 저 쪽에서 한 남자를 죽이는 걸 봤어요. 피를 흘리는 남자를 그냥 저기에 버리고 가버렸죠.” 살인을 목격하는 일은 카를로스에게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살인과 약탈, 방화 등 크고 작은 폭력들이 어린 카를로스의 눈 앞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는 지난 40년간 분쟁과 지진, 허리케인, 대홍수,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로 고통을 겪은 나라입니다. 끊임없는 재앙으로 국가의 사회기반시설은 취약해지고 불법 마약거래와 고질적인 폭력사태가 기승을 부리는 땅이기도 합니다. 유니세프 콜롬비아사무소의 폴 마틴 대표는 “콜롬비아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폭력입니다. 가정과 학교, 거리를 가리지 않고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유엔고등난민판무관에 따르면 콜롬비아는 국내 난민 수가 3백 만 명으로 수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내 난민 수가 많은 곳입니다. 이라크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불법무장세력들이 끊임 없이 일으키는 폭력은 콜롬비아를 이끌어갈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카를로스는 그나마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거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해질 무렵 메델린 중심가 니키타오 거리에서 저녁이 되면 본드를 마시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폭력사태로 부모나 집을 잃은 아이들로 또래 친구들과 거리에서 먹고 자며 살아갑니다.“우린 돈이 필요해요. 우리를 돌봐줄 부모님이 없으니까요.” 본드가 가득 든 비닐봉지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앳된 얼굴의 소녀 모니카가 얘기합니다. 모니카 옆에는 이미 본드에 취해 눈의 초점이 흐려진 카타리나가 앉아 있습니다. 두 소녀 모두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간에 그만 두었습니다. 학교 이야기를 하자 모니카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듯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러한 어린이들을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 콜롬비아 메델린 시는 ‘에스꾸엘라 부스까 니뇨(Escuela Busca Niño;EBN)’ 는 ‘학생을 찾습니다’ 또는 ‘어린이를 찾아가는 학교’라는 뜻의 교육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이를 지원함으로써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캠페인 운영자 클라라 세르나는 “우리는 마을들을 방문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거리에서도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이들의 상황을 평가하고, 왜 학교에 가지 않는지 가족들과 면담을 합니다. 원인을 찾은 후 아이들의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지요. 이 캠페인은 학교에 아이들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아이들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정부와 각 협력단체들이 긴밀하게 협력한 결과 이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다른 지역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카를로스도 EBN 캠페인 덕분에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메델린 시청은 도움이 필요한 거리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하는 특별한 팀도 운영합니다. 이들은 어린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훈련 받은 사회복지사와 심리학자, 특수경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니카와 카타리나도 이 캠페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회복지사가 거리를 떠도는 두 소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묻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회복지사와의 긴 상담 끝에 모니카와 카타리나는 눈물을 떨구었고 시청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모니카와 카타리나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BN은 콜롬비아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입니다. 폭력과 재앙이 난무하는 콜롬비아에 희망을 가지고 유일한 빛은 어린이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대표는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합니다. 교육을 통해 콜롬비아는 폭력과자연재해라는 부정적인 기운들을 극복할 에너지를 얻습니다.”글> 가브리엘 갈라넥 (유니세프본부 개발전문 컨설턴트)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베냉의 아이들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베냉의 아이들   서부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베냉의 한 마을. 부모가 죽어가는 어린 딸을 안고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습니다. 팔다리가 늘어져 눈조차 뜨지 못하는 아기는 생후 20개월된 파오지아. 영양실조 진단을 받은 파오지아는 언뜻 보기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앙상하게 야위어 있었습니다. 파오지아의 부모는 말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에게 옥수수죽을 먹였는데 왜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무엇이 파오지아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을까요?     파오지아의 부모는 어린 딸에게 오직 자신들이 수확한 옥수수만을 먹였습니다. 그 때문에 파오지아는 20개월이 될 때까지 옥수수에 포함된 영양소 외에 어떤 영양소도 섭취할 수가 없었지요. 부모의 무지 때문에 아기의 생명이 위험해진 것입니다. 베냉에서는 이처럼 부모나 주민들의 잘못된 문화적 관습이나 식생활에 대한 무지로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 중 많은 수가 생명을 잃습니다. 어린이 1천명 중 120명 이상이 다섯번 째 생일을 맞기 전에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어린이 5명 중 1명은 영양부족으로 인한 저체중아이며, 나이에 비해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어린이비율도 38%나 됩니다.   베냉의 북부 아리보리 지역 곰파로 보건소에서 일하는 보건요원 리나타 씨는 베냉 어린이들의 영양실태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메마른 북부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엄마가 자녀의 성장발육에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잘못된 문화적 편견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달걀을 많이 먹으면 커서 도둑이 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거나, 남녀차별이 심해 남자들이 고기를 사오면 부인이나 자녀들은 고기 한 점도 못 먹는다는 겁니다.”  이러한 잘못된 오랜 관습으로 지금 당장은 어린이들에게 뚜렷한 변화를 찾아볼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리 무언가를 먹여도 점점 어린이들이 말라가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죽음에 이르는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영양실조는 태아 때부터 시작되며, 한 번 걸리면 돌이키기 어려운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900만 명에 달하는 베냉의 국민들은 50개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영양교육을 실시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유니세프는 베냉의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영양실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14개의 의료보건소와 협력해 자원봉사자와 보건요원들이이 직접 가정과 마을을 방문해 올바른 영양섭취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3년 동안 아리보리 지역에서만 약 7천 명의 아이들이 심각한 영양실조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아이가 주술이나 귀신에 씌웠다고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부모들도 이제는 보건요원들에게 상담을 하고, 아이가 조금 아프다 싶으면 보건소에 데려옵니다. 제대로 걷지조차 못했던 6킬로그램의 영양실조 아기 파오지아는 유니세프가 제공한 영양실조치료식을 먹고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몸무게도 많이 늘었습니다. 앞으로는 아이에게 음식을 골고루 먹일 거라고 다짐하는 파오지아의 부모는 두 다리로 병원 마당을 혼자서 걸어다니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밝게 웃습니다.   베냉은 어떤 나라일까요? ◾ 인구 886만 명 ◾ 1인당 GDP 750불 ◾ 하루 1.25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극빈층 47% ◾ 5세 미만 사망률 1,000명당 121명 ◾ 초등학교 입학률 67% (입학한 어린이 중 절반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 ◾ 저체중아 비율 23% ◾ 어린이 발육부진율 38%

스리랑카 딜루샤나 자매 이야기

스리랑카 동부의 외딴 마을에서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8살 딜루샤나와 11살 다누시하 자매도 선생님이 칠판에 써준 문장을 열심히 따라 읽습니다. 오랜 내전과 쓰나미로 폐허가 된 학교들이 최근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새롭게 문을 열게 되면서 마을은 공부하려는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차 있습니다.딜루샤나는 바띠깔로아의 칼쿠다에 세워진 임시교육시설 바다무나이 타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 학생들은 20년 이상 지속된 내전과 폭력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없습니다. 마을이 한번 내전의 표적이 되면 물도 식량도 끊긴 채 완전히 고립되어 초토화되고 맙니다. 그리고 수많은 힘없는 어린이들이 무참히 희생됩니다. 게다가 6년 전에는 쓰나미가 덮쳐  3만 5천 명의 희생자와 4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바람에 나라는 더욱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딜루샤나 자매는 내전 중에 엄마를 잃었습니다. 엄마는 군인들에게 성폭행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재혼한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웃이나 친척들이 가끔 아이들을 보러 오지만 어린 자매는 오직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자매가 하루 온종일 먹는 음식이라곤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학교에도 가지 못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 갈대를 줍느라 수업을 종종 빠지기 때문이지요.그래도 딜루샤나는 의지할 수 있는 언니가 늘 함께 있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언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줘요. 제 옷도 빨아주고, 숙제도 도와주고, 씻는 것도 도와줘요. 그리고 제 긴 머리를 이렇게 예쁘게 땋아준답니다.”딜루샤나 자매처럼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내전이 남기고 간 상처로 여전히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주는 유일한 곳은 임시학교입니다. 스리랑카 내전지역에서 긴급구호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쳐온 유니세프는 내전이 어느 정도 종결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 스리랑카사무소의 교육담당자인 브렌다 하이프리크는 말합니다.“황폐화된 마을을 재건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일터를 가꾸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특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 보건과 위생, 아동보호 등에 대한 정보를 가족에게 전하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좀더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스리랑카 전역에 마련된 임시학교들이 중간에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학교와 주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1년 전 다시 문을 연 팅기리바다이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학교운동장을 청소합니다.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학생들은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학구열을 불태우며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오늘 딜루샤나와 다누시하 자매는 학교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딜루샤나는 길을 걸으면서 언니에게 속삭입니다.“내일도 오늘처럼 맛있는 점심을 먹고 언니와 열심히 푼 숙제를 선생님께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

파키스탄에서 온 편지

이 글은 파키스탄 홍수피해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다니엘 툴 유니세프 남아시아지역사무소 대표가 CNN을 통해 전한 내용입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늘 당장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세계에 전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근해에서 유입된 거대한 물줄기가 온 땅을 뒤덮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비슷한 재앙이 떠올랐고, 그 때와는 반응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피해 정도나 주민들이 겪는 고통도 그 때와 똑같은데 이번에는 홍수 피해자들을 돕고자 하는 절박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키 큰 나무에 근근이 달린 가지들만이 어쩌다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봇대도 물 아래 잠겨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피신해 있을까? 수면 위로 겨우 떠올라 있는 자투리땅에 삼삼오오 고립되어 있는 가족들이 보인다.파키스탄 땅 5분의 1이 아직도 물 속에 잠겨 있다. 농작물과 시장, 도로, 학교와 마을, 가족들이모여살던 집까지 모두 씻겨 내려갔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십 년간 구호활동에 매진해왔지만, 이번 홍수사태만큼 처참하고 암담한 현실은 본 적이 없다.몇 년 전 일어난 쓰나미는 이번 홍수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 파괴력은 비슷했었다. 쓰나미가 아시아를 강타한 직후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엄청난 재해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후원금은 올바르게 사용될까? 유엔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단체들이 제대로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을까?  지구촌의 여론은 뜨겁게 들끓었다.이러한 의문들은 쓰나미의 처참한 현장이 생방송 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모두 사라졌다. 엄청난 물결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지금 쓰나미가 관통한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정부와 인도주의단체들은 쓰나미 이전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절망 밖에 남지 않았던 땅에는희망의 기운이 가득하다.파키스탄도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홍수사태를 지켜보는 주변국들의 반응은 너무도 잠잠하다. 약 2천만 명의 파키스탄 주민이 피해를 입었으며, 이 중 8백만 명 이상이 18세 미만 어린이다. 이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4백만 명의 어린이는 홍역과 소아마비를 비롯해 치명적인 수인성질병인 세균성 이질과 설사, 콜레라의 위험 앞에 놓여 있다.이재민수용소에서 한 엄마를 만났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파리떼 속에서 무려 다섯 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몸에 걸친 옷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는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내 얼굴과 몸에서도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녀는 심한 설사로 고생하고 있었고, 아이들도 모두 몸이 아픈 상태였다. 단지 천막 하나를 보호막으로 사는 그녀와 아이들이 이 더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비가 또 내린다면 어떻게 견뎌낼까?  이번 홍수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은 5백만 명에 육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피부병 그리고 호흡기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물이 조금씩 빠져나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집도, 곡식도, 가축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이재민수용소에서는 그래도 많은 지원이 이루어진다. 유니세프는 매일 2백만 명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있으며, 약 80만 명의 어린이에게 이미 예방접종을 실시했다.하지만 여전히 의료진이 부족하고 구조를 위한 헬리콥터도 부족하다. 이재민을 위한 비누와 물통 등도 필요하지만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이다. 나는 파키스탄인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지난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때 볼 수 있었다. 구호활동가들은 쉬지 않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들에게 음식과 깨끗한 물, 의약품, 천막 등을 나누어 주었으며, 현지 주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었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앞다투어 인명구조에 나섰고,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다친 몸과 마음을 밤낮으로 치료했다.지구촌사람들 역시 이러한 인류애를 끊임없이 실천해왔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을 기억하는가? 세계적인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아이티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이번 대참사는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국경을 넘어선 재앙이다. 우리 모두 지구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인류이자 형제이다. 파키스탄 인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나누듯이 우리도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금 손을 내밀자. 오늘이 아니면 너무 늦다.""</a

천막학교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소녀 안지타가 전하는 이야기

마다가스카르의 아홉 살 소녀인 안지타는 마롤론도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지난 3월 마을을 휩쓸고간 태풍으로 교실이 사라진 뒤로는 계속 천막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 학기의 첫날입니다.  태풍으로 집을 잃다"이제 저도 3학년이 되었어요. 새 학년이 된 것은 좋지만 올해에도 천막 안에서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요. 태풍이 오기 전에는 번듯한 교실에서 공부했었거든요. 저는 태풍이 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태풍으로 집이 무너졌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요. 다행히도 태풍이 왔을 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했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은 가족은 없어요. 할아버지 집은 우리집보다 훨씬 튼튼해서 무너지진 않았지만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무서웠어요. 태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어요. 그 때 제가 본 광경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집도, 나무도 모두 태풍에 쓰러져 있었죠. 망고 열매들은 나무에서 모두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어요. 저는 재빨리 달려가 담을 수 있을 만큼 망고를 가져왔고 가족 모두가 맛있게 나눠 먹었어요."그러나 망고를 얻은 기쁨도 잠시 안지`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안지타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평평한 집터만 남아있을 뿐 지붕도 날아가고, 기둥도 뽑혀 없어진 것입니다..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못쓰게 되었죠. 접시와 냄비도 모두 사라져 밥을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옷은 모두 비에 젖어 넝마가 되었어요. 어린 제 여동생은 하염없이 울었어요. 부모님은 소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려고 서둘러 숲으로 들어가셨어요. 하지만 소들은 대부분 죽어 있었어요. 태풍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몹쓸 짓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울지 않고 용기 있게 참았어요. 유니세프가 천막학교를 만들다부서진 잔해를 모두 치운 뒤 안지타의 부모는 숲에서 가져온 나뭇가지와 대나무로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안지타는 친구들을 만나려고 학교에 갔지만 다시 찾은 학교에 안지타가 공부하던 교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학교건물이 서 있던 곳은 공터가 되어 있었고, 벽돌로 지은 단 한 개의 교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선생님들은 많은 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개 남은 교실에 대나무 기둥을 세워 교실을 나누었어요. 그러니까 소리가 섞여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나중에는 전학년이 같은 교실을 쓰면서 날짜와 시간을 구분해 수업을 받았어요. 수업시간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저는 다시 학교를 갈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그러던 중 유니세프가 어린이들을 위해 천막교실을 지어주었습니다. 비록 천막이지만 공간이 훨씬 넓어져 학년별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유니세프가 우리를 위해 천막교실을 만들어 주어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자 천막이 찢어지고 말았죠. 비 오는 날엔 구멍으로 비가 새기도 했구요. 유니세프는 곧 새 천막으로 교실을 바꿔 주었어요. 지금까지 우리 교실은 잘 버텨주고 있어요. 솔직히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너무 더워서 집중하기 어렵거든요. 더위에 못 이겨 수업을 듣다가 그대로 잠들 때도 있답니다."예쁜 교실이 많이 있는 학교, 태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학교를 꿈꾸는 안지타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더위를 견디며 천막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지진, 그 후 6개월…

아이티에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 처참하게 파괴되었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 아이티사무소 프랑소와즈 그룰루스 대표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합니다.“모든 사회기반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우려했던 대량 영양실조 사태나 큰 질병에 대한 발병률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잃은 많은 주민들이 이곳 난민촌에서 조금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안전한 식수를 마시고,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의 지원으로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는 등 유니세프와 협력단체들의 노력으로 내일을 위한 힘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아이티국제공항 근처의 난민촌에 자리잡은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UNICEF-supported ‘baby-friendly tent’)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들에게 치료와 영양 그리고 엄마와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생후 6개월까지 반드시 모유수유를 하도록 권장해 아기들의 면역력 증강과 성장을 위한 상담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5개월이 된 사브리나 미쉘(Sabrina Michel)은 지진 발생 직후에 태어났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았던 사브리나의 생모는 아이를 낳은 지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현재 사브리나는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에서 5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모인 베아트리스 테라느(Beatrice Terane)의 돌봄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베아트리스는 지진으로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녀가 다니던 섬유공장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자신의 아들과 사브리나까지 돌봐야 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어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두 아이를 기르는 거예요.”  약 2만3천명의 어머니들과 아기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고 있는 107개의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신생아 3,000여 명은 이곳에서 충분한 분유를 제공받으며 오늘도 안전하고, 아늑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밖에 유니세프는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1천3백 개의 천막 임시학교를 만들었고, 추가로 2천 개를 더 마련할 예정입니다. 또 위생보호를 위해 9천 개의 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지진으로 가족들과 흩어진 아이들을 구출하는 등 아동보호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2만 3천 명의 어머니와 아기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고 있는 107개의 ‘아기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생활합니다. 그 중 많은 아기들이 사브리나처럼 지진 발생 후 태어났습니다. 아기들은 이 공간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티를 건설하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삼촌이 발다를 입양하겠다고 엄마에게 얘기를 꺼낸 건 발다가 막 네 살이 됐을 때입니다. 발다는 세네갈 남부에서 엄마, 아빠, 여동생 콜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발다의 부모는 삼촌의 제안에 동의했고, 어린 발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그러나 삼촌은 발다를 키울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바로 발다를 다카의 마라부츠에게 보냈습니다. 마라부츠란 이슬람교 안에서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는 종교적 지도자, 교사 등을 의미합니다. 전체 인구의 94%가 이슬람교인 세네갈에서 마라부츠의 권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마라부츠 중엔 코란 학교를 운영하는 자도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도 종교학습을 위해 이 곳에 오기도 합니다. 발다의 삼촌도 수도 다카에 있는 학교 중 한 곳에 발다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발다가 간 학교의 마라부츠는 종교를 가르쳐 주는 대신 발다와 또래 아이들에게 거리로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했습니다. 발다는 번잡하고 지저분한 다카의 거리에서 빨간 깡통을 매고 몇 시간씩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해야만 했습니다. 마라부츠는 아이들에게 하루에 벌어와야 할 할당량까지 정해 주었습니다. 보통 300~500 세파프랑(1천 원 정도)였는데 행인들은 구걸하기에 너무 어린 발다를 가엾게 여겨 쉽게 돈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몫을 대부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구걸을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되는 날,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온 발다에게 마라부츠는 한 번만 더 할당량을 못 채우면 매질을 할거라며 무섭게 협박했습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발다는 마라부츠가 너무 무서웠고, 그날 밤 학교를 도망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발다의 집은 거리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돈과 음식을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 가족과 헤어진 발다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픈 적도 있었고,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지만 약을 먹거나 발라본 적은 없습니다. 상처가 나면 버려진 배터리 가루를 빻아 바르곤 했습니다. 발다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은 상처나 병을 치료하는데 그 방법이 최고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발다가 열 네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발다는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족이있는 따뜻한 가정은 아니지만 안전한 머물 곳을 찾은 것입니다. ‘어린이제국’이란 이름의 아동보호소가 바로 그 곳입니다.  다카 시내에 있는 하얀 건물은 발다와 같이 마라부츠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에서 살아가던 어린이 28명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유니세프는 마라부츠로부터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이 다카에만 1만 명, 전국에는 10만 명이라고 추정합니다. “이제 다시는 거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거리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이 곳에는 비숫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 주니까 너무 좋아요.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찾게 되겠죠?”그렇게 말하며 발다의 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맺혀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현재 세네갈에서 ‘어린이제국’ 운영자 및 다른 파트너들과 협력해 마라부츠로부터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글) 록산나 로캇 유니세프세네갈사무소 공보관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드에 맞서 투쟁한 소웨토 어린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아프리카연합은 1991년 이 날을 제정했습니다. 소웨토 사태는 1976년 6월 16일, 억압을 의미하는 아프리칸스(남아프리카 공용 네덜란드어) 수업을 거부하는 어린이 1만여 명이 거리로 평화행진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어린들에게 무력으로 대응했고, 무장경찰들의 최루가스와 총탄에 152명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됐습니다. 1977년까지 계속된 저항으로 약 700명의 어린이들이 희생됐고, 같은 해 6월 26일 정부는 아프리칸스 수업을 모든 흑인학교에서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지금 남아공은 월드컵 축제의 열기로 들떠 있습니다. 34년 전에 일어난 어린 학생들의 외침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불과 16km 떨어져 있지만 흑인거주지역 소웨토는 여전히 빈곤과 차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4년 전 소웨토 어린이들이 겪었던 소외와 폭력의 역사는 남아공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저는 아홉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 중에서 다섯을 잃었어요. 둘은 영양부족으로 저체중으로 태어나 며칠만에 세상을 떴고, 나머지 셋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모두 병에 걸려 죽었어요. 빨리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릴 수도 있었겠지만 먹고 살기 바빠서 병명조차 모르고 아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답니다."두 살 된 아기 바사이를 데리고 시에라리온 포트 로코 지역 로신타 마을의 소아과병원을 찾은 엄마 파트마타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슬픈 얼굴이 됩니다. 4명 남은 아이 중 바사이는 막내입니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심하고 통 먹지를 않아 먼 길을 걸어 병원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파산타는 더 이상 아이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사이가 가벼운 감기를 앓고 있으며 체중도 정상이라는 말에 파트마타의 얼굴이 금세 밝아집니다.파산타는 아이의 진료비로 약 1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파트마타의 가정에서 부담하기에 이 돈은 경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시에라리온은 세계에서 5세 미만 어린이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1천명 당 200명 이상의 어린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합니다. 병원비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병원마다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에 이러한 부담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병원에 잘 데려오지 않습니다. 그리고,이런 상황은 어린이사망률을 악화시킵니다. 병원비 부담 때문에 파트마타는 막내 바사이만을 데려왔습니다. 집에 두고온 네 살배기 루산노도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 루산노를 병원에 데려오게 될 지 기약이 없습니다.유니세프는 시에라리온 보건부 및 세계은행, 세이브더칠드런 등과 협력해 병원에서 자의로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추가비용을 폐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고, 최근 시에라리온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코로마 대통령은 임산부와 5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무료진료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정책의 실행으로 혜택을 받을 어머니와 어린이는 120만 명이나 되지만 정책이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멉니다. 파트마타는 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책은 바뀌었지만 돈이 없으면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이 이 곳 시에라리온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글) 이자 다비에스/유니세프 시에라리온사무소

아이티 소녀 쥬디스의 꿈

무너져버린 나의 세상지진이 일어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날 따라 램버트 교장선생님은 우리를 집으로 일찍 돌려보냈어요. 평소에 나는 학교 뒤뜰 청소를 하느라 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렀거든요.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학교수가 살해되었고, 폭동이 날 위험이 있다는 말을 전하며 서둘러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거리에서 꾸물거리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지요. 우리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어요. 갑자기 거리의 모든 것들이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거리를 뒤덮은 흙먼지로 우리들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변해버렸지요. 우리는 아우성 치고 비명을 지르면서 거리를 우왕좌왕 뛰어 다녔어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지요. 도착해 보니 우리집도 부서져 있었어요. 엄마는 무너진 집더미 아래 깔려 있었는데 엄마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돌들이 워낙 크고 무거워서 아빠 혼자 힘으로는 옮길 수 없었어요. 나와 동생 제퍼슨은 아빠를 도와 바위들을 치우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엄마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계속 아파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그날 밤 우리는 엄마를 땅에 묻고 말았어요.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요. 우리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어요. 그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했지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공유한 우리들은 그날 밤 거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잠이 들었지요. 엄마의 꿈엄마는 나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였어요.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었으니까요. 엄마 품에서 잠들면 모든 어려움을 잊을 수가 있었지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집도 없고 엄마도  없어요. 나의 피난처 두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삶이 눈 앞에서 무너져버렸어요. 나는 몇날 며칠을 울었어요. 때때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밤마다 엄마 꿈을 꿨어요. 엄마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여전히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어요. 나는 엄마를 자주 기억해요. 엄마와 나는 TV앞에 앉아 음악쇼를 보곤 했어요.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늘 격려해 주셨죠.엄마는 언젠가 내가 무대 위에서 서서 나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난 엄마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래요. 엄마의 꿈은 바로 나의 꿈이니까요. 지진 발생 이후, 집을 잃은 우리는 5주간 포르토프랭스를 떠나 주변의 시골마을로 갔어요. 마을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해 외로웠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엄마가 더 많이 생각났어요.  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오곤 해요.학교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포르토프랭스로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 우리는 가족과 친척들까지 모두 8명이 작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살아요. 아빠와 오빠는 마루바닥에서 자고, 나와 언니, 사촌동생 2명이 침대 두 개에서 함께 자요. 비가 오면 우리 방은 물이 새서 금세 수영장이 되어 버려요. 비닐봉지로비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죠. 그래서, 비 오는 밤에는 거의 잠을 설친답니다. 이 곳에서는 학교가 너무 멀어요. 나는 매일 2시간씩 총 6km를 걸어서 학교에 가요. 학교가 너무 멀어 다니기가 힘들지만, 엄마의 꿈을 이루려면 내가 공부를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요.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때는 작은 목 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여요. 엄마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네 자신을 위해 계속해야 해. 학교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랍니다. 나는 학교를 사랑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구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생의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아요. 나는 꿈이 아주 많아요. 엄마가 사랑했던 내 노래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지금 합창단의 일원이랍니다. 지진에 대한 노래도 작곡했어요. 많은 친구들이 지진으로 내 곁을 떠났어요. 우리 5학년 학급은 74명이었지만 지금은 32명만이 남아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친구들은 주변 나라로 피난을 갔어요. 램버트 교장선생님은 엄마가 없는 제 멘토가 되어 주셨어요. 교장선생님은 내가 학교 오기 전에 아침을 먹지 못 할까봐 걱정하세요. 선생님은 엄마 같아요. 엄마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제게 주지요. 말로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안답니다. 교장선생님은 지진에 대해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주셨어요. 나는 엄마와 친구들 이야기를 할거예요.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한 내 친구는 자신의 손을 잡고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해 얘기할 거래요.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서 로를 도와야만 해요.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아픈 상처를 서로 감싸주면서 우리는 성장해갈 거에요.

4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말라리아는 매년 1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입니다. 말라리아환자의 90%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며, 말라리아로 위협받는 나라는 약 100개국에 이릅니다. 말라리아는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살충 처리한 모기장만 사용해도 어린이사망률을 2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유니세프는 지난 2000년 10년 계획으로 WHO, UNDP 등 유엔가구들과 함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롤백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종료를 200여 일 앞둔 4월 19일 아프리카에서의 말라리아 퇴치성과를 담은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보고서에 따르면 살충처리모기장을 사용하는 인구는 2004년 30만 명에서 2009년 100만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으며, 살충처리모기장의 생산량은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약 2억 장의 살충처리 모기장을 공급받았으며, 말라리아 치료 특효약인 ACT공급량도 30배 늘었습니다.그러나 말라리아 치료를 받는 어린이비율은 34%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린 영유아는 발병 후 48시간 안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될 위험이 높지만 짐바브웨, 르완다,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말라리아치료를 제대로 받는 어린이비율은 10% 미만입니다.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필요한 모기장은 약 3억 5천만 장으로 1억 5천만 장의 모기장이 더 필요하고, ACT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행히도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으로 2004년부터 2009년 사이 국제 말라리아 기금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희망적인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라리아퇴치캠페인의 총책임자 콜 섹 박사는 말합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투자가 어린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확보된 기금은 필요한 기금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기금으로 3분마다 한 명의 어린 생명을 구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말라리아는 고질적인 풍토병입니다. 콩고에서도 말라리아 감염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키산가니 시의 한 보건소에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다급하게 뛰어옵니다. 안겨 있는 아이는 네 살바기 여자아이 세실리아. 열이 펄펄 끓고 구토와 경련을 반복합니다. 전형적인 말라리아 증상입니다. 세실리아의 엄마 루시는 매우 지쳐 보입니다. 딸이 증세를 보인 지는 한참 되었지만 먹고 사는 일이 바빠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파서 우는 딸을 돌보며 밤을 지새다가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먼 길을 걸어 병원에 올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간호사 플로렌스는 세실리아에게 약을 처방해 주고, 앞으로의 감염 예방을 위해 루시에게 살충 처리 모기장을 주었습니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5세 미만 어린이들이 한 해 동안 최소 6회씩 말라리아에 걸립니다. 해마다 18만 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말라리아로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현재 유니세프와 WHO, USAID, 유럽연합 등과 협력해 550만 개의 모기장을 콩고민주공화국 오리엔탈과 마니마 지역 180만 가구에 공급했습니다. 6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가구 당 3개의 살충처리 모기장이 무료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모기장을 공급하기 위해 화물수송기와 배, 강을 건너기 위 한 카누와 기차, 트럭,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 모든 교통수단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키산가니 시의 유니세프사무소 물류팀에서 일하는 미싱기 씨는 말합니다. "우기가 되면 물살이 거세지면 모기장 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트럭은 질퍽해진 도로에 자주 빠지고, 다리가 끊겨 모기장을 직접 머리에 이고 배달해야 하는 일도 자주 생깁니다."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모누이는 세 살바기 아들 사무엘이 한 달에 서너 번씩 말라리아에 걸린다며 기뻐서 이야기합니다."지금 사용하는 모기장은 구멍이 숭숭 뚫려 무용지물이었는데, 이렇게 안전한 새 모기장을  갖게 되어 정말 행복해요. 이젠 아이들이 말라리아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겠지요?"글: 바비안 암본고 (유니세프 콩고민주공화국사무소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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