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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짐바브웨 멜리사 이야기

  • 2008.12.11
  • 조회수 : 10612

물이 생겨 행복해진 아홉살 소녀 주즈미타

  • 2008.12.02
  • 조회수 : 10064

전쟁으로 얼룩진 어린이의 삶

  • 2008.11.11
  • 조회수 : 11026

인신매매에 희생되는 아이들

  • 2008.09.22
  • 조회수 : 11597

학교로 돌아온 미얀마 어린이들

  • 2008.06.03
  • 조회수 : 9547

젊은 미망인의 눈물-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이 우리에겐 재난입니다

  • 2008.05.16
  • 조회수 : 9165

미폭발 폭탄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 2008.04.04
  • 조회수 : 9515

파푸아뉴기니 소녀 베스시바의 꿈 - 물이 부족하지 않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 2008.03.11
  • 조회수 : 10321

나이지리아 소녀들의 희망 -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

  • 2008.01.08
  • 조회수 : 10359

브라질 거리의 아이들

  • 2007.12.07
  • 조회수 : 10934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짐바브웨 멜리사 이야기

“배고픔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 서부의 빈민지역에 여섯 살 소녀 멜리사는 늘 배고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고, 친구들과도 놀고 싶지만 몸이 너무 약해서 그럴 수가 없어요.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항상 배가 고파요.”1년 전 멜리사는 에이즈로 아빠를 잃었고, 엄마 또한 에이즈에 걸려 언니와 멜리사 두 어린 자매만을 남겨둔 채 시골로 요양을 갔습니다. 엄마 아빠 없이 방치된 어린 자매는 끼니를 구할 방법이 없어 하루 하루를 소금만 넣은 옥수수 죽으로 연명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멜리사의 몸무게는 10킬로그램까지 감소했습니다.이는 9개월 아기들의 평균몸무게이자 여섯 살 평균 몸무게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결국 멜리사는 온몸이 쇠약해져 학교에 갈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짐바브웨 전역에서 멜리사와 같은 어린이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질병을 물려받은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가난과 차별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반복되는 자연재해와 내전으로 식량난은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어린이를 보호하는 사회서비스 기능은 상실됐습니다. 유니세프 짐바브웨 사무소의 로렌드 모나쉬 대표는 말합니다.“질병과 영양실조가 짐바브웨 어린이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은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하라레의 소아과에서 치료받는 심각한 영양실조 어린이 수는 매일 평균 15명에 달합니다. 이 지역의 6개월~12세 어린이의 영양실조 상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수확량이 모자라 기본 식량이 부족하고, 이러한 상황이 다시 곡물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식량난이 심각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짐바브웨의 60여 곳에 위치한 어린이 병원을 지원하고, 어린이들의 몸무게와 키. 팔 둘레 등을 측정해 건강상태에 맞게 우유, 비타민, 칼슘, 견과류와 같은 영양식을 제공합니다. 또한 부모 및 탁아모들을 대상으로 어린이 영양과 보호, 위생에 관한 교육을 매일 실시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어린이 병원 프로그램을 통해 멜리사도 영양식을 제공받았습니다. 영양식을 먹은 멜리사는 3일 후 몸무게가 3킬로그램 증가했고,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젠 많이 튼튼해졌어요. 학교에 갈 수도 있고요.” 한결 건강해진 모습으로 멜리사가 이야기합니다. 모나쉬 대표는 짐바브웨 어린이들의 권리를 보호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짐바브웨 어린이들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아플 때 치료를 받고, 배고프지 않아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인도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짐바브웨 어린이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치치 싱지/유니세프 짐바브웨사무소 홍보부장)

물이 생겨 행복해진 아홉살 소녀 주즈미타

"마음껏 놀 수 있게 되어 좋아요."   필리핀 비사야스 섬 서부에 위치한 카피즈 지역의 안토니오 벨로 초등학교 운동장. 낡은 핑크색 스커트를 입은 아홉 살 소녀 주즈미타가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습니다. 까르르 웃는 소녀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파란 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잠시 쉬기 위해 그늘에 들어와 앉은 주즈미타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맺혀 있습니다."마음껏 뛰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뛰어 놀 수 없었거든요. 뛰어 다니면 쉽게 지치고 목도 마른데 물이 모자랐어요. 학교에 수도가 한 개 뿐이어서 목을 겨우 축이고 나면 더러워진 손발을 씻을 수도 없었거든요." 5학년인 다이앤은 물이 부족해서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야기합니다."설사를 계속 하는 바람에 자주 결석을 했어요. 보건소에서 검사를 하면 항상 기생충이 잔뜩 발견되었구요. 물이 부족해 잘 씻지도 못하니까 병에도 잘 걸렸어요."지금까지 안토니오 벨로 초등학교 학생 400여 명은 단 한 개의 공동화장실과 수동펌프를 사용해왔습니다. 그 바람에 화장실 앞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줄이 너무 길어 용변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 다른 장소를 찾아가 일을 해결하는 바람에 학교 주변의 위생환경도 크게 악화되었습니다.3학년 여학생 중 한 명은  화장실을 이용 못 해 용변을 참다가 결국 옷을 더럽히는 바람에 울면서 집에 간 경우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더 이상 화장실 앞에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유니세프가 세면장과 화장실을 학교에 설치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생긴 화장실과 세면장에 아이들은 스스로 올바른 위생 습관을 알려주는 슬로건과 그림을 그려 넣어 예쁘게 장식했습니다. 세면장에는 손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비누도 놓여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이 학교 뿐 아니라 필리핀 정부와 협력해 낙후된 지역 초등학교에 식수시설과 화장실을 만드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6학년 담임 노에미 교사는 얘기합니다.  "학생들에게 항상 손을 씻는 습관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장실과 세면장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위생의 중요성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어 바른 생활습관을 배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뿐 아니라  근처에 사는 가족들도 유니세프가 만들어준 식수와 화장실 덕분에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물이 모자라 빨래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길어온 맑은 물로 빨래도 하고 음식도 조리합니다.주즈미타가 밝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엽니다. "화장실과 세면장이 생겨서 제일 좋은 건 더 많이 놀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행복하거든요!"멀리서 친구들이 주즈미타를 손짓해 부르고 있습니다."주즈미타, 뭐 하니? 빨리 와서 놀자!" 주즈미타가 친구들의 무리 속으로 힘차게 뛰어갑니다.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려고 재잘되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교정을 가득 채우기 시작합니다.글: 라넬린 칼릴로/유니세프필리핀사무소

전쟁으로 얼룩진 어린이의 삶

이라크 모하메드 이야기올해로 열 두 살인 모하메드는 잦은 폭력사태로 악명 높은 이라크 바그다드의 사드르 시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의 폐해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고 모하메드는 얘기합니다. “이 곳의 생활은 매일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죠. 전쟁이 어떤 건지 아세요? 집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정전과 공습, 폭발이 계속돼요. 집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없어요. 사람들은 도시와 집에 갇혀버리죠. 민병대들은  나쁜 짓을 마구 저지르고 다녀요. 정직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 돈을 벌 수도 없고요.”모하메드는 4명의 형제와 2명의 누이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끔찍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바그다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자 인구밀도가 높은 사드르 시는 2003년 이래 이라크에서 가장 무력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도시입니다. 민병대를 사드르 시에서 몰아내려는 정부의 공격이 많은 지역에서 무력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빈번한 폭력사태는 이 지역을 고립시키고, 사람들을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식수와 의약품, 식량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모하메드는 고통스런 일상을 털어놓습니다. “전쟁은 우리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식수공급과 전기는 끊어졌고, 마을 길 곳곳에는 폭탄이 묻혀있어 차를 타고 이동할 수조차 없어요. 로켓과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면 아빠는 우리들을 한 방에 모두 모여 있도록 했어요. 우린 그곳에서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숨어 지냈어요.” 그러나 아무리 주의 깊게 행동해도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밤에는 로켓포 하나가 모하메드 집 근처에 떨어져 모하메드의 집 창문과 자동차가 모두 부서지고 모하메드의 아빠에게 큰 부상을 입혔습니다. 이라크 정부 발표에 의하면 이 공격으로 약 2,60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교육 기회를 잃어가는 어린이들사드르 시 어린이들은 폭격과 공습으로 몇 주일 씩 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모하메드는 슬픔에 잠겨 얘기합니다. “총소리와 폭발음이 계속 들려오는 바람에 집에서 나올 수가 없었어요. 친구들도 볼 수 없고, 중요한 시험이 있었지만, 학교는 아예 문을 닫아버렸어요.”사드르 시내 학교 중 29개 이상의 학교가 전쟁으로 파괴됐습니다. 몇몇 학교들은 무장단체의 기지가 되어 무기창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문을 다시 연 학교에는 교사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깨진 창문과 부서진 책걸상, 파괴된 화장실, 그리고 공포에 떨고 있는 학생들입니다.정전이 발표되었지만 많은 부모들이 불안 때문에 자녀들을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들의 학업이 거의 중단된 상황입니다. 유니세프의 학교 지원 사업유니세프는 무력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사드르 시내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장에 파견된 유니세프 직원들은 현지 NGO단체와 함께 대형 식수탱크를 이용해 매일 1만 3천 이상의 가구에 안전한 식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식수와 필수의약품을 시내 병원에 공급해 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내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유니세프는 적극적으로 학교 재건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학교 피해실태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 일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사드르 시의 많은 학교들이 전쟁 이전부터 이미 전기와 식수, 위생 시설 등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유니세프는 새 책걸상과 교재를 학교에 공급하고, 파괴된 건물을 신속하게 고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정신적으로 겪고 있는 전쟁 후유증은 쉽게 치료하기 어렵습니다.유니세프 이라크 사무소 교육담당관 Mette Nordstrand는 학교 지원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학교를 복구하는 일은 벽돌을 쌓고 시설을 고치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불안한 환경에서 어린이들은 교육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유니세프는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바로 학교이며, 교육이 어린이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지 어린이들 스스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 교육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하메드는 말합니다.“우리 학교는 지금 상황이 아주 나빠요. 하지만 빨리 좋아졌으면 해요. 학교에 다시 나가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어요.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제 희망은 이 폭력사태가 얼른 끝나고 학교에 가서 다른 나라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노는 거에요. 우리가 겪은 일들을 다른 나라 친구들도 알게 된다면 함께 슬퍼할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누구도 어린이들이 전쟁으로 이런 고통을 겪기를 바라진 않을 테니까요.”   

인신매매에 희생되는 아이들

일곱 살 소년 하루나와 다섯 살 여동생 벨도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 이 곳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북서부의 작은 도시 파에아의 난민수용소이다. 한낮의 태양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오후 늦은 시각이 되어야 사람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늘 아래 앉아 아이들과 함께 더위를 식히고 있던 아버지 술레이만은 2005년 6월 23일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날 그의 가족은 무장강도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아침 일찍 그들이 나타났어요. 꽤 많은 숫자였는데 우리집 문을 마구 두드리더군요.” 그는 자신이 마치 그 날 그 방문 안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듯 몸서리 치며 말했다. “총알이 비처럼 쏟아졌어요. 제 아버지와 남동생이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총알 하나가 제 등을 뚫고 갈비뼈 사이에 꽂혔어요. 그 와중에서 그들은 우리 가축을 마구잡이로 약탈해갔어요. 그러나 가장 끔찍했던 일은 그가 아내와 1주일된 막내, 하루나와 벨도까지 모두 납치해간 것입니다.” 그들은 납치한 사람들을 30킬로미터 떨어진 그들의 본거지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군과 반군이 싸움을 벌이는 무법지대에서 무자비한 범죄를 저질러온 집단이다. 그들은 중무장을 하고 북부의 주요도시들 사이의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몸값을 위해 사람을 납치하고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는 이들 때문에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피해 집을 버리고 떠났다.  “아주 나쁜 사람들이에요. 무기를 들고 있어서 무서웠어요. 우린 매를 맞을까봐 놀 수도 어없었어요. 그 사람들이 웃는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매일 우리를 때리기만 했어요.” 하루나가 땅으로 고개를 떨구며 말한다. 납치범들은 약간의 몸값을 받고 술래이만의 아 내와 갓난아이를 풀어준 뒤 나머지 아이들의 몸값으로 한 명당 약 5,000불을 요구했다. 그리고, 술레이만이 이 돈을 마련할 때까지는 2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어린 두 남매는 납치범들의 소굴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매를 맞으면서 성장해야 했다.   술레이만은 이 지역 목축업협회의 회장을 맡을 만큼 마을 주민 사이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 지역의 무장강도들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탈을 당한 유서깊은 목축업 가문의 출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납치사건 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공포를 느낀 나머지 아내와 막내를 비롯한 집안 대부분이 이웃나라인 카메룬으로 피난을 가버리고, 홀로 남은 그는 두 아이의 몸값을 구하느라 온갖 궂은 일을 다 해야만 했다.  아이들에게 있어 납치범과의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음식은 죽지 않을 만큼만 주었고.거의 씻지도 못한 채 생활했다. 안전하게 마실 물도 없었고, 병에 걸려도 약 한 봉지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아이들을 돌보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무서웠지만 아빠가 곧 올 거라고 생각하며 견뎠어요. 무서울 때면 우리는 노래를 불렀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와 너무 행복해요.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아요. 우린 이제 자유롭게 되었고, 지금 엄마 집으로 가고 있어요.” 하루나는 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등 뒤에 숨어만 있던 벨도가 작은 목소리로 오빠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술래이만은 벨도가 거의 말이 없으며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 돌아왔을 때 딸의 몸은 이 투성이였어요. 그래서, 머리칼을 모두 깎아야 했지요.” “전 이제 괜찮아요.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고, 잼을 바른 빵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두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바싹 여위어 있었다. 기운이 없어 놀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하루 하루 회복하는 중이다. 그러나 하우나는 아직도 밤이면 놀라서 잠을 깨고 소리를 지르고 울기도 한다. 아버지는 말한다. “저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목동으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저는 목축일로 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 목축은 안전한 직업이 아닙니다.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으로 가축을 치고 우유 등을 짜서 팔면서 살아왔지만 이 직업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보다 나은 기술로 다른 직업을 찾게 할 겁니다.” 북부지역에서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이미 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어린이 납치는 유니세프의 큰 관심사이다. 술레이만의 가족처럼 국경을 넘어 피난하는 가족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집 근처 숲이나 밀림 같은 곳에서 숨어서 생활한다. 그리고, 이 나라의 안전은 만성화된 빈곤과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많은 어린이와 가족들이 조용한 위기에 처해 있다. 글 : Rebecca Bannor-Addae/유니세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사무소 기록담당관

학교로 돌아온 미얀마 어린이들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덮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6월 2일 미얀마 피해지역의 학교들이 문을 다시 열고 새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의 마을 7곳과 수도 양곤의 1개 학교는 피해 정도가 매우 심각해 한 달 후에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니세프는 미얀마 교육부가 학교문을 다시 열 수 있도록  협력했습니다.  교육당국과 지역사회와 함께 학교시설 보수 작업을 돕고 있으며, 피해 지역 초등학교에 학용품 및 학습교재, 놀이용품세트 등을 제공함으로써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2일 다시 문을 열게 된 양곤의 한 초등학교 교장Daw Khin Thandar Aung 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유니세프에 정말 감사 드립니다. 유니세프는 우리 학교에 지붕판 200개와 기본학습도구세트 2개,  놀이용품세트 1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또한 화장실 수리에 필요한 자재들도 추가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유니세프가 신속하게 물품을 지원해 준 덕분에 부서진 학교 지붕을 빨리 고칠 수 있었고, 이렇게 오늘  95%의 학생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니세프는 피해지역 어린이들에게 10만 개의 학습자재세트와  15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학습서, 2천 개의 학습도구세트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니세프는 임시거주용 천막과 식수정화제를 나눠주고 있으며,  1천 개 장소에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한 임시학습공간을 세우고 있습니다.   유니세프 미얀마사무소 Ramesh Shrestha 대표는 미얀마 교육 재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연재해가 발생해 마을 전체가 파괴되었을 때 학교문을 다시 여는 것은 복구 작업의 가장 중요한 시작입니다. 어린이들은 학교를 다님으로써 일상의 평화와 안정감을 되찾기 때문입니다.”유니세프는 엄청난 자연재해로 큰 충격에 빠진 어린이의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2006년 발간된 “Let’s Read Initiative” 라는 어린이도서를 다시 발행해 피해학교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가 펼치는 “학교문을 다시 열자” 캠페인은 영유아들도 대상으로 합니다.  영유아개발센터 및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지역사회 NGO를 통해 영유아 발달을 위한 학습도구세트를 나눠주고 있으며, 피해가 심한 센터의 수리와  보수작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3세 미만 영아들을 교육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은 부모들을 대상으로 양육하는 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 학교에 못 다니는 특수아동을 위한 시설 재건도 유니세프의 주요사업 중 하나로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조만간 피해 지역의 특수아동 3천 명을 위한 학습도구세트가 전달될 것입니다.  미얀마의 부모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에 큰 가치를 둡니다. 국립초등학교의 등록율은 남녀 어린이 모두 82%로 아주 높은 편입니다. 이곳에서 교육은 사회경제적 상황, 종교, 인종, 정치성향, 사회적인 신분을 넘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Hlaing Tharyar마을의 초등학교 4학년생인 키요는  한 달 만에 학교에 돌아온 소감을 말합니다.   “학교에 다시 나올 수 있게 돼 너무 기뻐요. 친구들과 선생님도 만날 수 있고, 이제 공부도 할 수 있으니까요."6월 2일은  미얀마의 미래가 새롭게 시작된 날입니다. 글쓴 이 : Angela B. Thaung

젊은 미망인의 눈물-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이 우리에겐 재난입니다

미얀마  Pyapon 마을의 Leikkukone 탑 사원에서 지내고 있는 마수수 (가명, 26, 사진 중앙)와 그녀의 세 살 배기 딸은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채 하루 하루 굶주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곳에  들이닥친 사이클론은 평화롭던 마을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비옥한 삼각주 지대는 황폐한 땅으로 변했습니다.이  사원에는 3천여 명의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지역 당국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정부운영의 임시캠프로 이동하라고 명령했지만 마수수는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좁고 불편한 데다 구호품도 부족하지만 고향 친구들이 여기에 있고,  딱히 갈 친척집도 없기에,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 UNICEF Myanmar/2008/from video    “나르기스가 마을을 덮친 날은 둘 째딸의 첫돌이었어요. 저녁 무렵부터 강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몹시 어두웠어요. 밤 아홉 시쯤이나 되었을까요. 가족들 모두 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밀려 들어왔지요. 눈을 뜨자 집 안팎 이곳 저곳에 물이 가득한 광경이 들어왔어요.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물 때문에  집은 무너졌고, 곧 물에 휩쓸려 사라졌어 요. 우린 높은 곳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붕괴된 건물의 잔해와 나무들이 우리를 계속 때렸어요. 물 속에 휩쓸렸을 때 두 딸을 품에 꼭 안고 있었지만 작은 아이가 제 품 안에서 심하게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아이를 놓치고 말았어요. 남편은 딸을 구하러 쫓아갔고, 그것이 제가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어요. 저는 한 손으로 큰딸을,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제 몸을 지탱했어요. 자정 무렵이 되어 동네 이웃들이 저희 모녀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매달려 있었어요. 제 얼굴과 팔은 피로 범벅이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 모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랍니다.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마실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투쟁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괴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전부는  살아남은 딸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재난에서 살아 남았다 고 말하지만, 재난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재난입니다.”Pyapon 마을에는Leikkukone 사원과 같은 임시 거처가 45곳이 있습니다. 재난 발생 첫 주에, Ayeyarwady 지역에서만 임시거처를 필요로 하는 이재민의 수가  17,000명 이상이었습니다.  마을 당국이 음식을 나눠주고는 있지만, 이재민들이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유니세프는 미얀마 적십자와 함께 사이클론 피해 지역에 식수 정화제, 구강수분보충염, 응급치료키트, 필수의약품, 방수포, 생활용품 등의 긴급구호품들을 신속히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더 많은 구호 물자가 필요합니다.  취재 : 산드라 린( Sandar Linn)

미폭발 폭탄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지난 1월 17일 귀를 찢는 굉음이 라오스 남부 지역 Ban Phonehai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조용했던 시골마을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폭발 직후 마을 사람들은 폭발음이 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폭발한 것은 2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투하됐던 미폭발 폭탄(unexploded ordnance; UXO). 처참한 현장에는 폭발된 대포조각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현장의 상황을 본 후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목격담을 전했습니다. “현장에 갔을 때 두 어린이는 이미 즉사한 후였고, 다른 두 어린이는 끔찍한 부상을 입고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폭발 현장에 있던 나머지 어린이들도 부상을 입었지만,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아이들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을로 달려왔습니다. 10살짜리 소년, Ta Ngae는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바로 우리 앞에서 친구들이 죽었어요. 우린 그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이번 사고로 총 4명의 소년이 사망했고, 5명의 남녀어린이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2살인 Vi는 동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올해 라오스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미폭발 폭탄 관련사고 중 하나입니다.“어린이 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이번 사고는 끔찍한 비극입니다. 살아남은 5명의 어린이들과 피해 가족, 마을 모두가 오랫동안 고통받을 것입니다.” 유니세프 라오스의 어린이 보호사업부장인 Victoria Juat는 말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상처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Luc Delneuville는 폭발이 발생했던 사바나켓 지방에서 미폭발 폭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활동하는 NGO ‘벨기에국제장애단체(HIB)’의 프로그램담당관입니다. 그는 사고로 팔과 두 다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아이들의 경우 신체적인 상처보다 정신적 상처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경고합니다.“어린이들은 사고 후에도 그들에게 일어난 비극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을 포함한 심리적 치료가 매우 중요합니다.”이번 사고는 종전이 30년 이상 지났지만, 미폭발 폭탄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1960년대 말에서 1970대 초 사이에 약 2백만 톤의 폭탄이 라오스에 투하됐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전세계에서 1인당 가장 많은 폭탄을 떨어뜨린 경우입니다.투하된 폭탄의 약 30%가 전쟁 당시 폭발하지 않은 채 땅에 매장됐고, 현재 이러한 미폭발 폭탄들이 심각한 인명 피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해 한 해에만 약 99 명의 사상자가 보고됐지만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라오스에서 일어난 지뢰 사고의 희생자 중 최소 절반이 어린이들입니다. Ban Phonehai 마을에서 터진 폭탄과 비슷한 종류인 테니스 공 크기의 집속탄을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면서 수많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어린이들이 폭발 잔해에서 모은 금속 조각들을 모아서 판다는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빈민이 많고 미폭발 폭탄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들에서 이러한 거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 미폭발 폭탄의 위험성 알리려 노력(← 지뢰위험지역에서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지뢰 경고 교육)유니세프는 HIB와 같은 NGO 단체들과 라오스 정부가 미폭발 무기의 위험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전국 곳곳에 묻혀 있는 미폭발 폭탄 문제를 추적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상자를 돕고 치료하는 일부터 사고 예방을 위한 메시지 전달 캠페인, 추적 과정을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국가 데이터까지 수많은 통합적 접근법이 요구됩니다.” 라고 Victoria Juat는 설명합니다.이를 위한 중요한 방법이 지뢰의 위험을 경고하는 교육입니다. 유니세프는 부모들이 미폭발 폭탄 및 무기 잔해를 모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지 자녀들에게 심각성을 경고하도록 진행되는 HIB의 시범참여학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Victoria Juat 부장은 당부합니다.“유니세프가 미폭발 폭탄제거활동을 진행하는 동안 라오스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위험을 이해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하며, 위험 물체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 학습해야 합니다. 특히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고, 미폭발 폭탄의 위험을 부분적으로만 경험한 젊은 세대들에게 이는 더욱 중요합니다. 유니세프는 라오스 정부가 지뢰 금지 조약 및 관련 협정들을 비준하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지뢰를 비롯한 전쟁의 폭발 잔여물들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생명과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파푸아뉴기니 소녀 베스시바의 꿈 - 물이 부족하지 않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베스시바의 아침 등교길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강가에서 세 살 터울의 여동생 조지나와 함께 세수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세수가 끝나면 두 자매는 각자 가져온 큰 물통에 물을 담습니다. 학교에 가져가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강에 들러 물을 떠 옵니다. 이 일은 베스시바가 지난 5년간 매일 해온 일입니다.베스시바가 다니는 코글램 초등학교는 지난 몇 년 동안 물 부족 문제로 여러 차례 수업을 중지하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그 시간들이 베스시바는 너무도 아깝습니다. 베스시바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계속 반복되어 학업에 피해를 주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베스시바 만이 아닙니다. 7학년 진급을 앞두고 함께 경쟁하는 학급 친구들 모두 같은 걱정을 합니다. 8학년까지 마쳐야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지만 수업 시간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베스시바와 친구들은 물 부족 문제를 겪는 건기에는 하루에 반나절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학교의 식수공급원이라고는 모기들이 서식하는 800 갤런 물 탱크 하나가 전부입니다. 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7~8년 선배들이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날엔 우리는 일찍 집에 가야 해요.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많이 뛰면서 놀지 말라고 늘 말씀하세요. 학교에 마실 물도 없는데 너무 뛰면 쉽게 목이 마르게 되니까요.” 베스시바는 그렇게 말합니다.건기가 되면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이 마실 물을 각자 학교에 가지고 오도록 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여자어린이의 지위는 매우 낮고, 삶의 선택권도 없습니다. 인생의 선택권을 부모가 쥐고 있기 때문에 절대 복종해야 하고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돌보고 집안의 허드렛일을 거드는 등 많은 노동을 합니다.베스시바나 다른 여형제들은 부모로부터 특별한 지원이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이 변하지 않는 강력한 관습으로 특히 파푸아뉴기니 고지대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매우 낮은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남자어린이들은 여자어린이보다 교육에 있어 항상 우선권을 가집니다. 여자어린이들은 일단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등록금을 내지 못하거나 학교에 적절한 식수와 화장실 시설이 부족한 이유로 인해 도중에 학교를 그만둡니다.선생님이 되고 싶어요.“여동생과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으니까 저는 아주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 학비를 버느라 애쓰는 아빠에게 너무 감사해요.”베스시바는 방과 후 오후 내내 정원에서 잡일을 하고 주말에는 동생과 함께 마켓에서 음식을 팝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매우 진지하게 학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베스시바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공부합니다. 5학년 때에는 학급에서 2등을 해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어하는 베스시바에게 학교의 식수 부족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베스시바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도시의 학교들처럼 코글램 초등학교에도 충분한 식수가 공급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취소되거나 단축되는 날이 저는 정말 싫어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공부해야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고, 그래야 제가 원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 물이 부족한 날에는 잊지 말고 집에서 커다란 물통을 가져와야 해요.” 어린 베스시바가 결연한 표정으로 얘기합니다. 파푸아뉴기니 농촌지역 학교들이 겪는 물 부족 문제는 많은 학생들의 학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는 학교에 적절한 식수공급시설을 만드는 일을 국가의 우선사업이 아닌, 학부모와 학교가 책임질 문제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인구의 약 85%가 일정한 수입 없이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 농촌지역에서 학부모가 돈을 모아 적절한 식수시설을 학교에 만드는 일은 요원한 과제로 보입니다.2년 후 식수시설이 완비된 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하면 물 걱정 없이 하루 종일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베스시바는 믿습니다.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베스시바는 매일 아침 1리터의 물통에 물과 희망을 가득 채운 채 학교로 향합니다.

나이지리아 소녀들의 희망 -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

나이지리아 북쪽 바코리 지방의 나다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아이들은 원을 그리며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체육시간. 여선생님의 지도 아래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흰색과 녹색으로 된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여자어린이들은 긴 히잡을 머리에 쓴 채 운동을 합니다. 히잡 착용은 이 지역 전체의 전통입니다.(←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UNICEF는 나이지리아 북쪽 지방의 720 개 학교에 학습교재를 무료로 공급했습니 다. 바실라(10, 가운데)는 이 프로젝트 수혜자 중 한 명입니다. © UNICEF Nigeria/2007/Nesbitt)교문 밖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머리 위에 큰 쟁반을 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여자 어린이들입니다. 머리 위 쟁반에는 빵과 땅콩 등이 있습니다. 교문 안 친구들에게 팔 간식거리입니다.장사를 하는 아이들 무리 속에서 열 두살의 자밀라를 만났습니다. 자밀라는 매일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채소를 팝니다. 학교를 그만둔 지는 벌써 4년이 됐습니다.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어요. 교복이 없어서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지요. 엄마는 제가 돈을 벌어오기를 원했어요. 그럼 언젠가 그 돈으로 교복을 사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죠. 하지만 벌써 4년이 지난 걸요.”자밀라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 하는 수많은 여자 어린이들 중 한 명입니다.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에서는 취학연령 어린이 중 40%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화되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정부와 유니세프는 다른 협력단체들과 함께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더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한편 초등과 중등교육에서 남녀간의 성 격차를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유니세프영국위원회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5천만 불 지원을 약속했고 여기에 힘입어 사업은 현재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습니다.바실라도 자밀라와 마찬가지로 1년 전 부모님으로부터 학교를 그만 두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부모님은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비를 벌어 오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슬펐어요. 전 정말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었거든요. 학교에 가고 싶어 거의 열병을 앓았어요.” 다행히도 바실라가 학교 밖에 있었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나이지리아 북쪽의 700개 이상의 학교에 학습교재가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실라와 같이 가난한 많은 어린이들 가정에는 이러한 지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바실라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는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책가방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귀가 솔깃했죠. 어렵긴 하지만 바실라를 학교에 다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7남매를 키우고 있는 바실라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합니다.(← 나이지리아 북쪽 Bakori의 Nadabo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유니세프가 제공한 책가방을 멘 소년, 소녀들이 체육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 UNICEF Nigeria/2007/Nesbitt)교육의 중요성학교로 돌아간 바실라는 놀라운 변화를 보았습니다. 열악하기 짝이 없던 학습 환경이 넓고 쾌적하게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학교의 모든 곳들이 깨끗해졌어요. 너무 좋아요.” 주 정부가 재건축한 학교를 보며 바실라는 얘기합니다. 이제 학교엔 남녀 화장실이 각각 분리되어 설치됐고, 식수를 얻을 수 있는 펌프도 생겼습니다. 교사들도 이 프로젝트 덕분에 아이들을 보다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학교로 돌아온 바실라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제 학급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 되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바실라의 생각은 아주 확고합니다.“교육은 정말 중요해요. 한 사람이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된다고 해 보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많은 엄마들이 아기를 건강히 낳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잖아요.” 나이지리아에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하는 수 많은 소녀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바실라는 더 열성적으로 공부합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바실라는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아버지에게 읽어주고, 보여주기를 좋아합니다. 바실라의 우수한 성적은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일곱 명의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아버지에게 미소를 가져다 주는 유일한 기쁨 입니다. 바실라 옆에서 누나의 우수한 성적을 부러워하는 어린 남동생이 누나의 책가방을 메 봅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해준 파란색 책가방입니다. 책가방에는 크고 분명하게 어린이교육을 상징하는 슬로건이 새겨져 있습니다.‘저를 학교에 보내 주세요!’

브라질 거리의 아이들

브라질의 산타 테레사 지방의 아동청소년보호센터 CRIA 본부를 찾았을 때 열 다섯 살 소년 망고(사진)는 건물 뒤편에서 교사들과 함께 모노폴리 게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셔츠 없이 바지만 입은 편안한 차림으로 카드와 주사위를 돌리며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망고의 모습은 영락 없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었습니다.“저도 평범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어요."2004년 이 곳에 들어와 재활훈련을 받았던 거리의 소년 망고는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살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준 이 곳에 가끔 찾아오곤 합니다. 망고는 아주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고는 부모와 4명의 형제 자매가 있는 브라질의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망고가 자란 올린다 시는 인구의 약 40%가 판자촌에서 빈민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도시였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폭력적인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녀들을 끊임 없이 구타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심한 구타로 어머니가 6개월간 실명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갈등은 계속 심화되었고 결국 열 살 되던 해 망고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출을 했다가도 다시 마음을 바꿔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그 때마다 집안분위기는 여전히 싸움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망고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날 한 대라도 치면 나도 똑같이 되갚아 줄 거에요.” 그리고, 그 날은 망고가 가족, 친구들과 영영 헤어져 거리의 삶을 살게 된 시작이 되었습니다.망고는 그 날부터 5년 동안 거리에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망고는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거리에서 사는 동안 또래집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고 말할 뿐입니다.CRIA 센터는 2004년 8월 7~15세의 거리의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올린다 시 당국이 세운 곳입니다. 망고는 당시 이 곳에서17명의 소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의 어린이들을 집과 학교에 돌려보내고, 가정 및 사회에 다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망고는 이 곳에 와서도 거리에서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본드를 흡입하고, 불량한 생활을 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망고에겐 아무 희망도 없었습니다. 망고는 살인자가 되고 싶다는 등 공격적인 언사를 쉽게 내뱉곤 했습니다. CRIA에 들어온 후, 망고는 다시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사는 이산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지역에서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아버지  는 일정한 일거리 없이 홀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망고는 형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형이 사는 집은 협소한 데다  형의 친구들도 함께 지내고 있어 아주 좁습니다.  지금 이루어진 망고의 새 가족은 2명의 어린 남동생과 형, 형의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망고가 거리에서 사는 동안 어린 동생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형 크리스티아노는  거리의 재활용 폐휴지를 모아서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쉬는 날은 2주일에 하루 뿐입니다. 새벽부터 해질 때 까지 노동을 해서 생계비를 법니다. 망고의 어린 남동생은 형의 친구들이 돌보고 있습니다.그러나 망고는 PAI (어린이청소년통합관리정책)가 지원하는 5천 명이 넘는 거리의 아이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유니세프가 PAI를 지원하고, 올린다 시 당국이 해당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는 망고와 같은  거리의 어린이들이 희망을 되찾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올린다 시 당국의 사회 사업 관계자와 NGO기구, 기금 모금 단체, 재단 등을 모두 지원합니다.  망고는 말합니다. “저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을 경험하고 싶어요. 가족들이랑 바다에도 가보고 싶고요.” 망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폭력과 가정 붕괴를 겪는 수많은 청소년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브라질 올린다 시의 쓰레기장 전경.  많은 거리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폐휴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UNICEF/HQ00-0353/Alejandro Balaqu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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