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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소말리아 아이들의 평화학교

  • 2007.10.12
  • 조회수 : 15277

성냥공장 노동자 카비샤, 4년만에 학교로 돌아오다

  • 2007.08.20
  • 조회수 : 9389

동티모르 사태 1년 후, 딜리의 난민캠프 아이들

  • 2007.08.07
  • 조회수 : 8964

수단 다르푸르 야라학교 아이들

  • 2007.07.30
  • 조회수 : 10023

다카의 빈민 어린이들에게 찾아온 희망

  • 2007.04.11
  • 조회수 : 10058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 이집트의 네르민 남매

  • 2007.03.27
  • 조회수 : 9550

그루지야의 작은 참새- 리카와 나티아

  • 2007.02.22
  • 조회수 : 9789

미래의 헤어 디자이너, 토고의 코코

  • 2007.02.12
  • 조회수 : 8892

인도네시아 소녀 모리의 희망 일기

  • 2007.01.23
  • 조회수 : 9807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소말리아 아이들의 평화학교

소말리아 준자치 지역 푼트랜드에 속한 북동부 지역 무도그의 수도 갈카요. 이 곳은 1991년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17년째 분쟁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삶의 터전들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미움과 증오만이 남았습니다.2007년 9월 이 곳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남과 북의 경계지역에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함께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가 세워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이름은 ‘갈카요 평화학교’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평화교육’을 교육과정에 포함해 가르칠 것이며. 학생과 교사, 교육위원회도 모두 남과 북이 절반씩 섞여서 구성될 것입니다.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평화학교 건립을 제안한 것은 바로 유니세프였습니다. 유니세프는 오염된 식수와 열악한 주거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남과 북측을 중재하던 중에 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학교가 세워지는 경계지역은 ‘그린라인’으로 불리는데 학교도 없을 뿐 아니라 성폭행과 마약, 폭력 등 잦은 범죄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기 꺼리는 공포의 지역이었습니다.“남쪽 친구들과 친해졌으면 좋겠어요”갈카요 북쪽에 살고 있는 열 한 살 난 소녀 히보는 말합니다. 새롭게 세워지는 평화학교 근처에 사는 히보는 지금까지 남쪽 친구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평화학교의 개교를 손꼽아 기다리는 열 한 살 소녀 히보. 갈카요 북쪽 마을에 살고 있다.  ⓒ UNICEF Somalia/07-07-2/NEZoffice)“남쪽 출신의 오빠나 언니들이 짓궂게 아이들을 괴롭히고 아이들을 때리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남쪽 아이들을 ‘폭력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저는 남쪽 아이들과 한 마디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알고 쉽고 함께 공부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요.”  히보는 자신이 사는 집 바로 옆에 평화학교가 세워진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지금 다니는 학교는 30분 넘게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평화학교가 열리면 꼭 다닐 거예요. 새로운 학교가 집 바로 옆에 생긴다는 게 너무 신나요. 더 이상 멀리까지 힘들게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요. 예전엔 학교 가는 길에 나이 많은 언니나 오빠들이 괴롭히곤 했거든요.”유니세프와 지방정부의 지원으로 예전에는 한 번도 협력한 적 없는 남과 북의 지역사회 인사들이  땅을 함께 기부하고, 학교를 지었습니다. 학교가 열리면 6세~14세 어린이 600명이 읽기와 쓰기, 산수, 과학, 사회, 이슬람 교리 등을 배우게 됩니다. Maurice Robson 유니세프 소말리아 사무소 교육담당관은 말합니다.“이 평화학교는 갈카요 지방 뿐 아니라 소말리아 전체에 큰 의미를 지니는 건물입니다.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 적대시하던 두 지역의 사람들이 어린이 교육을 위해 함께 협력해 일하는 동료가 되었으니까요. 소말리아의 다른 지역에 좋은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어린이 교육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서로를 미워하던 두 지역 주민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평화학교를 통해 얻은 이러한 변화는 아이들의 교육내용에도 반영될 것입니다.” 남과 북, 양 지역 주민들은 3,000 평방 미터의 학교부지를 공동으로 마련했고, 학교가 완공되면 교사들의 월급도 함께 조달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에는 4개의 교실과 위생적인 화장실과 급수시설, 급식소 등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수업할 수 있는 모든 설비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학교 근처 북쪽 마을에 살고 있는 다섯 살 난 아이의 엄마인 Fadumo Abdi는 새 학교의 완공이 반갑고 기쁘기만 합니다.“우리 마을 어린이들이 이제 평화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지금까지는 우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그 학교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복잡한 데다 등하굣길이 멀어서 위험했답니다. 안전문제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았지요. 남과 북의 경계선에 학교를 세운다는 건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제 아이도 나중에 이 학교를 다니면서 남쪽 아이들과 사이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해요. 저 또한 남쪽 아이들의 부모들과 잘 지내고 싶어요. 이 학교가 갈카요의 남북 관계를 굳건하게 해 줄 거라고 믿어요.”(← 유니세프소말리아 사무소 Balslev-Olesen 대표가 갈카요평화학교 부지를 방문했습니다. 4개의 교실과 식수, 화장실을 완벽하게 갖춘 안전한 학교가 세워질 것입니다.  ⓒ UNICEF Somalia/07-07-2/NEZoffice)평화학교는 이제 남과 북의 닫혔던 마음을 이어주는 우정의 다리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어른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갈카요 평화학교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남과 북은 이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냥공장 노동자 카비샤, 4년만에 학교로 돌아오다

소녀의 이름은 카비샤. 인도 타밀 나두 주에 살고 있으며, 나이는 14살입니다. 지금은 연필을 들고 책상 앞에서 활짝 웃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비샤는 연필 대신 성냥공장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을 쥐고 있었습니다. (→ 노동 현장에서 구출되어 학교로 돌아온 카비샤 (14세)가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 Ranjan Rahi / UNICEF)폭죽산업으로 유명한 시바카시 마을의 성냥공장에서 열 살 때 일을 시작한 카비샤는 몸에 해로운 성냥개비의 가연성 화학물질을 마시며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졌을 때는 학교에 다녔지만 아버지가 사망하자 6명의 형제 자매들은 어린 두 동생만 빼고 모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성냥공장에서 보낸 카비샤의 소녀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습니다. 독풀과 화학물질을 만져 손을 까맣게 변했고, 나쁜 공기 속에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바람에 허리병과 기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처음엔 오직 하루 일당, 30루피 (700원)를 벌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당시엔 무얼 해야 옳은 지 아무 생각도 없었죠. 관심은 오직 제 일당이었어요. 화학물질을 계속 만지다 보니 몇 개월 만에 손이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쉬면 하루 일당을 벌 수 없다는 생각에 카비샤는 몸이 아플 때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점점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졌어요. 비록 얼마 못 다니긴 했지만 공부도 잘 했고, 선생님한테 칭찬도 많이 들었거든요. 매일 공장에서 벗어나 학교에 돌아갈 날을 꿈 꾸었던 것 같아요.”카비샤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유니세프가 인도 정부와 함께 진행한 어린이노동자 보호 프로젝트 덕분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유니세프의 활동가들이 카비샤를 노동현장에서 구출해 학교에 등록시켜 준 것입니다. 유니세프와 인도 정부는  어린이 노동이 심각한 타밀 나두 주 마을들에 어린이 노동에서 해방된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학교에서 기초학력을 쌓은 뒤 아이들은 일반학교에 가게 됩니다. 카비샤는 이 학교에서 모자란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일반학교 학생들보다 오히려 훨씬 빠른 학습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학력이 우수해 카비샤는 14세 나이에 맞는 일반학교의 8학년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유니세프 타밀 나두 사무소 Tim Schaffter 대표는 말합니다.“많은 어린이들이 일터를 떠나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유니세프가 어린이노동자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어린이노동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합니다.”  타밀 나두 주에서 가장 문맹률이 높고, 개발이 뒤떨어진 지역인 다르마푸리 지역에만도 이러한 학교가 19개나 있습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이 학교는 정규 학습과정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잃어버린 유년기의 기쁨을 되돌려 주는 수업도 집중적으로 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노래와 춤, 연극 등을 배우도록 권장하는 한편 어린이들이 노동의 부담을 벗고, 상처를 극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곳에서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칠판에 적어서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상호교류하는 방법으로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 →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카비샤  © Ranjan Rahi / UNICEF )유니세프와 인도 정부가 실시한 전국 어린이노동 프로젝트 덕분에 1996년 이후로 3,600명 이상의 어린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노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개가 아이들의 수입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인도 정부는  노동을 그만두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일반 학교의 정규과정에 편입할 때까지 한 명당 한 달에 100루피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카비샤 또한 학교로 돌아오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엄마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지친 엄마는 카비샤가 공장에 다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고, 딸이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지 그 중요성을 인식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니세프의 활동가들과 카비샤는 끈질기게 엄마를 설득했고 마침내 카비샤의 엄마는 학교에 가는 것이 딸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제 카비샤에게는 공장 동료가 아닌 같은 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아직까지 카비샤의 손에는 성냥공장의  화학물질 잔재가 까맣게 남아 있지만 이제 그녀는 누구보다 글을 잘 쓸 수 있고,  누구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 생각이 옳았다는 걸 가족들 모두에게 꼭 증명할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카비샤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인도의 어린이들이 얼마 안 되는 보수를 받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포기한 채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밀 나두 주에서 유니세프와 인도 정부가 전국 어린이 노동프로젝트를 실시한 후, 카비샤와 같은 수많은 인도 어린이들이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되찾고 있습니다. 

동티모르 사태 1년 후, 딜리의 난민캠프 아이들

13살 난 자켈 핀토와 사촌들이 딜리의 한 주차장에서 산 지는 일년이 넘었습니다. 이들은 2006년 5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 폭동이 일어나 집이 불에 타고 생명에 위협을 받은 이후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엔 빌딩 앞에 있는 오브리가도 배럭스 주차장에는 폭동이 극에 달했던 한 때, 7천여 명이 피신해 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약 800여 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텐트는 안전을 위해 널빤지로 문을 해서 달고, 예전의 집에서 침대와 선반을 구해 와 지금은 제법 집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동티모르, 딜리의 오브리가도 배럭스 난민 캠프에 있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술래 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 UNICEF Timor-Leste/2007/See이 난민 캠프에 살고 있는 유니세프 어린이 보호 담당 직원, 마리아 필로메나 벨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곳은 이제 정말 집 같고 동네 같지만, 이렇게 살고 싶어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집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 보았지만 사람들의 위협을 받거나 혹은 동네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다시 몇 주 만에 돌아왔습니다.” 일년 전 동티모르 사태는 시민 폭동으로 시작하였으나 경찰과 군부가 서로 대치하게 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무기를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아직까지도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동부 지방 사람들과 서부 지방 사람들로 나누어져 대치하는 지역적 긴장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이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들도 폭력사태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자켈 핀토는 작년 등교 길에 같은 학교 아이들이 시비를 걸어 배에 칼을 맞을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히 그의 가족이 동부 지방 출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제 배를 찌르려는 순간, 주변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그 애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저는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 와중에도 어떤 아이는 연필로 제 배를 찔러 상처를 내고 옷을 찢었습니다.” 자켈 핀토는 이제 동부 출신 사람들의 피난처가 된 동네에서 학교에 다닙니다. 유엔 경찰의 주둔으로 전반적인 안정은 되찾았지만, 딜리에서는 아직도 폭력 사태가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심리적인 스트레스나, 난민 캠프의 복잡한 주거 환경, 미흡한 안전조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성적 학대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현재 동티모르 전역에 약 10만 명의 난민들이 있으며, 그 중 약 3만 명이 딜리에 있습니다. 동티모르, 딜리의 오브리가도 배럭스 난민 캠프에 있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만들기 블록 놀이를 하고 있다. ⓒ UNICEF Timor-Leste/2007/See폭동 사태가 발생한 직후, 유니세프는 여러 어린이 단체 및 동티모르 정부의 사회복지담당부서와 함께 어린이 보호 지원단을 구성했습니다. 이 어린이 보호 지원단은 지원자들을 훈련시켜 각 난민 캠프에 어린이 보호 담당자로 배치하고, 어린이들을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맡도록 했습니다. 어린이 보호 지원단은 힘든 일을 겪은 어린이들이 운동과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마음의 상처를 떨칠 수 있도록 난민캠프 안에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유니세프는 난민캠프에 축구공과 줄넘기, 배구공 등이 들어있는 놀이용품세트 161개와 만들기 블록 116 세트, 손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500개를 배포했습니다. 유니세프 직원 마리아 필로메나 벨로는 난민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연극, 구연동화, 손 꼭두각시, 노래, 춤 등을 난민캠프 어린이 보호 담당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오브리가도 배럭스 캠프의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은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 아래입니다. 이 공간은 난민캠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들어오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로서 어린이 보호 담당자들이 관리합니다. “여기서 배구 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11살 난 비토리아 다 코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까르르 웃습니다. 비토리아의 친구인 아마랄도 캠프에서 사귄 친구들을 가리키며 얘기합니다. “여기 놀러 오면 밖에서 생기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나지 않아요.” 동티모르, 딜리의 오브리가도 배럭스 난민 캠프에 있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유니세프에서 제공한 이야기 책을 읽고 있다. ⓒ UNICEF Timor-Leste/2007/See매일 오후, 나이가 좀 더 많은 어린이들은 방과 후에 이 곳에서 배구를 하며 여가를 즐깁니다. 때로는 집안일을 끝낸 엄마들이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뺏어가면 고함을 지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장거리며 걷는 호기심 많은 아이는 확성기를 만지작거리다 크게 한 번 불어봅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은 어린이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이 공간은 특히 자켈 핀토의 동생 세사리오와 같이 학교를 그만 둔 어린이들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배움터이기도 합니다. 혼자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는 세사리오는 학교 가는 대신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 와서 형들과 즐겁게 지냅니다. 여기는 세사리오가 다른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세사리오가 학교로 돌아갈 용기를 친구들로부터 얻게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글: 브리지트 씨이/ 유니세프 동티모르 사무소

수단 다르푸르 야라학교 아이들

수단 다르푸르 남쪽에 위치한 ‘야라라’는 마을은 내전으로 잘 알려진 다르푸르의 황폐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곳입니다. 최근까지도 인종과 부족간의 전쟁으로 긴장감이 가득했던 이 곳은 지금 토착민 푸르족과 유목민 아랍족이 함께 어울려 발전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야라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마을 만들기’ 운동은 지붕, 창문 등 학교 시설을 개선시켰습니다. 현재 4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 UNICEF Sudan/2007/Bakri Mirghani Maki 내전이 끝난 후 마을 주민들은 힘을 모아 어린이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한때 폐허였던 학교는 이제 아이들의 웃음 소리 가득한 활기찬 곳이 되었습니다. 6~14세 사이의 어린이 400명이 새로 단장한 학교에서 하루 5시간 이상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중 약 100명은 여자 어린이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학생들이 언제든지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학교에 수도를 설치했고 화장실도 새로 지었습니다. 교실에는 책걸상과, 분필, 교과서 등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학부형교사모임도 만들었습니다. 8학년 수학 교실에서 만난 암단과 아미드는 열세 살 동갑내기입니다. 아랍족 출신인 두 아이의 부모는 모두 양을 치는 유목민입니다. 이 마을에서 아랍족은 소수민족이지만 아이들의 부모는 3년째 두 소년을 아무 걱정 없이 야라 마을에 남겨두고 유목 생활을 하고 있습니 다. 마을 어른들이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학교에 보내 학업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세의 암단 (왼편)은 다르푸르 남쪽의 아랍 유목민 가정 출신입니다. 암단의 부모는 아들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야라 마을 어른들에게 암단을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한 후 계속 유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인 아랍족의 암단은 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마을 만들기’ 운동이 있기 전까지는 야라 마을에도 종족간의 충돌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UNICEF Sudan/2007/Bakri Mirghani Maki 엔지니어를 꿈꾸는 아담은 말합니다. “부모님을 따라 유목 생활을 하면 학교가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드니까 이 곳에서 살라고 부모님이 결정하신 거에요.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님을 따라 다니면 우리는 공부 대신 매일 양을 몰아겠죠. 그랬다면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잃어 버렸을 거에요. 지금은 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인생을 발전시킬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거라고 믿어요.” 엄마, 아빠를 만나지 못한 지 벌써 석 달. 가족들이 그립긴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는 두 소년 모두 대단합니다. 아미드는 지금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될 거라고 얘기합니다. 이 곳의 아랍족은 대부분 가난한 유목민이지만 아이들의 미래에 거는 기대만큼은 남다릅니다. “야라 마을에는 아랍 출신 어린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랍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정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자원봉사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기도 하고, 여러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어린이 교육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야라 학교의 모하메드 이브라힘 카릴 교장은 그렇게 설명합니다. 야라 학교 8학년 수업을 듣고 있는 여학생. 400명 학생 중 4분의 1이 여학생입니다. 마을은 여자어린이 교육권장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모든 취학 연령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 UNICEF Sudan/2007/Bakri Mirghani Maki이러한 변화가 오기까지는 유니세프가 현지 NGO들과 1999년 시작한 ‘어린이에게 친근한 마을 만들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은 주민들이 안전하고, 발전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마을을 총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어린이입니다. 카릴 교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서 적절한 지원을 했기 때문 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대표 사례가 교육입니다. 이제 학교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다함께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교육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야라 학교는 모든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민족과 부족간의 충돌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수단은 지금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마을에 희망을 가져다 준 야라 학교와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글 : 에드워그 카르와딘/ 유니세프수단사무소 홍보담당관

다카의 빈민 어린이들에게 찾아온 희망

학교에 다니게 된 이브라힘과 리마 올해 일곱 살 난 이브라힘은 초등학교 1학년. 부모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가 본 문맹자입니다. 이브라힘의 부모는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 하나 살 때도 셈을 못해 쩔쩔 매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습니다. 집안이 워낙 가난한 지라 이브라힘도 부모처럼 문맹의 대물림 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브라힘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닌 후로 우리 가족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셈을 할 줄 아니까 시장에 가서 우리가 산 야채나 과일값을 금방 금방 계산할 수 있지요. 부모님이 번 돈을 어떻게 나누어 써야 하는지 그것도 알게 되었어요. 언젠가 제가 자라서 직업을 갖게 되겠죠? 제가 지금 배우는 셈이나 읽기, 쓰기가 좋은 직업을 갖게 해 줄 거에요” 예전에 아브라힘은 밤이 되면 무척 지루하고 심심했지만 이제 밤시간도 즐겁기만 합니다. 친구들로부터 책을 빌려와 읽기도 하고, 글을 모르는 부모와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합니다.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아들을 볼 때마다 이브라힘의 부모는 아주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극빈층이 모여 사는 이 곳에서 어린이들이 노동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브라힘은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가 일을 나간 동안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면서 여가시간을 보냅니다. 이브라힘 가족의 생활은 아직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브라힘은 다카에서 시행되는 도시빈민 어린이 교육프로젝트 덕분에 학교를 다니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2004년 7월부터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일하는 NGO그룹에 의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교육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6~9세 연령층의 도시빈민 어린이들에게 비공식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카의 주요 빈민지역에 설립된 200개의 교육센터에서 6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다카와 같은 대도시로 밀려들어오는 인구 때문에 다카에서는 도시빈민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도시인구의 50% 이상이 빈민이며, 그 중 30%는 생계를 꾸리기 힘든 극빈층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혼잡한 슬럼 지역에서 풀이나 대나무로 엮어 지은 임시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빈민가 어린이들은 교육 부문에서 심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불법거주지인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공식 교육기회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는 화장실 등의 기본시설도 없고 교사의 질도 떨어지는 데다 좁은 교실에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수업을 받는 등 학교환경이 아주 열악합니다. 여러 NGO가 도시빈민가의 비공식 교육센터를 운영하지만 아직 NGO의 숫자가 부족한 형편입니다. 빈민가의 초등학교 입학률은 남녀 어린이 할 것 없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조차 규칙적으로 출석하지 않습니다.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다카 빈민지역의 남자어린이 중 27%, 여자어린이의 24%가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시빈민가의 많은 어린이들이 이미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남녀 어린이들은 기술을 익힐 기회가 없어 임금이 낮은 일에 종사하게 되고 결국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도시빈민 어린이들을 위한 이 교육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아홉 살 난 마수드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마수드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수드는 자신이 졸업 후 가장 도움이 될 과목은 과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솔직히 작문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물을 끓이는 법, 손 씻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우리 가족들이 잔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제가 학교에서 배운 위생 지식들을 엄마한테 알려준 뒤로는 우리 가족들은 훨씬 건강해졌어요.” 마수드의 아버지는 릭샤 운전사이며 어머니는 벽돌공장의 노동자입니다. 학교가 파하면 마수드는 엄마를 도와 벽돌 깨는 일을 합니다. 마수드의 어머니는 벽돌을 깨는 숫자만큼 돈을 받는데 100장을 깨면 대략 1불 정도의 임금을 받습니다. 그래서 마수드는 매일 어머니를 돕고 있습니다. 가계 수입을 한 푼이라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저는 벽돌 깨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벽돌 공장은 우리집에서 어무 먼 데다 그 일을 하면 자주 손을 다치거든요 가끔씩 아버지는 집에서 남은 시간에 벽돌 깨는 일을 하라고 벽돌을 집으로 가져오곤 하지요. 일하는 건 싫지만 내 가족을 돕는다는 생각에 불평 없이 하고 있어요.”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학교에 다니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산재해 있는 문제들은 아직 많습니다. 일하는 대신 학교에 다님으로써 빈곤가정의 가계수입이 줄어들 뿐 아니라 어떤 아이들은 학비나 교과서, 학용품 등의 비용을 감당 못 해 입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다카에서 여자어린이들의 교육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합니다. 여자어린이들은 집안 허드렛일을 하거나 아기를 돌보는 등 집안일의 부담이 더 크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얻기가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육받지 못한 여자어린이들은 또한 매춘 등의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곱 살 난 소녀 리마는 위험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극빈가정에서 성장해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도움으로 꿈에도 그리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마는 학급의 막내이지만 책을 가장 좋아하고 많이 읽는 학생 중 하나입니다. “저는 책이 너무 좋아요. 예쁜 색깔의 그림들을 보는 것도 좋고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행복해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 이집트의 네르민 남매

16살 네르민과 남동생, 모하메드가 살고 있는 곳은 이집트 카르무즈 (Karmouz)의 노동자 도시 알렉산드리아입니다. 낡은 건물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네르민과 모하메드의 보금자리인 작은 아파트가 나옵니다. 남매의 어머니는 어릴 적 세상을 떴고, 4년 전엔 아버지마저 병으로 사망해 네르민과 모하메드 단 둘이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아가 되자 남매의 현실은 더 고되고 힘겨워졌습니다. 이집트 제 2의 도시, 카르무즈에는 빈곤과 가족 해체로 극빈 상황에 내몰리는 어린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 거리의 아이들로 전락하거나 여러가지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는 아이들이 많지만 네르민과 모하메드는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밝은 봄 기운이 스며 있는 네르민과 모하메드의 보금자리는 어린 남매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작은 아파트는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침대와 부엌도 먼지 한 점 없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습니다. 거실 벽에는 레바논 팝스타의 미소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네르민은 찾아온 손님을 위해 차를 끓이느라 분주합니다. 차 준비를 끝낸 뒤 자신에게 닥친어려운 위기들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 미래에 대한 걱정스런 눈빛의 네르민 ⓒ Claudia Wiens / UNICEF Egypt) "처음엔 혼자 잠 자는 것조차 무서웠어요. 하지만 곧 익숙해졌죠.” 네르민은 방 안을 둘러보면서 얘기합니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야 하는 위기도 겪었지만 이제 그 어두운 기억은 희미해졌습니다. "운 좋게도 저와 동생은 협회의 도움을 받아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네르민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떠오릅니다. 네르민이 말하는 협회는 Sidi Ali El Sammak Society라는 NGO를 말합니다. 이 NGO는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운영되며 알렉산드리아의 극빈층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 돌아가신 네르민의 부모님 사진 ⓒ Claudia Wiens / UNICEF Egypt) 이집트에선 첫 사례였던 3년 프로젝트의 이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고 있으며 각 가정의 어린이 상황을 체크해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관련 NGO가 개입합니다. 네르민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메르바트는 채소상이었던 네르민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던 2003년부터 남매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네르민의 아버지가 죽은 후, 저희는 주변에 돌보아줄 친척이 있는 지부터 찾아봤습니다. 당시 남매는 스스로 살아갈 방법이 전혀 없었고, 학교를 중퇴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으니까요.” 메르바트는 당시 상황을 그렇게 회고합니다. 현재 협회는 네르민과 모하메드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협회의 도움으로 네르민은 서기 일을 배우고 있으며 모하메드는 목수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협회는 학비뿐 아니라, 새는 아파트 지붕을 보수해 주고, 침구도 지원합니다. 메르바트는 네르민과 모하메드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메르바트와 같은 사회복지사는 남매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서 네르민 남매 같은 상황은 너무나 흔한 경우라고 얘기합니다. "각 가정을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고 질문지를 준 후, 그들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봅니다. NGO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최대한 찾아봅니다. 지원을 할 때는 직접 어린이에게 하거나, 가족을 통해서 합니다." "우리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시를 찾은 유니세프 이집트사무소 대표 마논코트 박사는 말합니다. "저처럼 어려운 상황에 빠진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우릴 도와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걸 아는 거에요." 유니세프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네르민의 의미 있는 한 마디입니다.

그루지야의 작은 참새- 리카와 나티아

"집에서 살 때 저는 너무 불행했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전 이 곳이 좋아요. 여기에선 아무도 저에게 상처주지 않거든요." 올해 15살이 된 리카를 처음 만난 곳은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스패로우 홈 (Sparrow Home)''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참새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곳에서 리카는 자신처럼 폭력과 학대를 피해 가출한 뒤 거리에서 살았던 어린이 50여 명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독립국이 된 그루지야는 다른 연방국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빈곤이 심화되면서 거리의 어린이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스패로우 홈''은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학대와 폭력 없는 따뜻한 가정을 선물해 주기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의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 옷가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와 교육받을 기회도 제공해 줍니다. 어린이들은 이 곳에서 춤과 연극, 그림 수업 등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들의 소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폭력과 학대로 상처 받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스패로우 홈에 들어와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회복됩니다. (← 미술치료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리카. ⓒ UNICEF Georgia) 7년째 이 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나나 원장은 말합니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여기에 옵니다. 그루지야에는 현재 이런 아이들이 6천명 넘게 있습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우리는 아이들이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정서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도록 도와 주는 일이 중요하지요." 정부가 무상지원한 ''스패로우 홈''건물은 트빌리시에서 가장 낡은 건물이지만 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은 이 곳이 잘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지난 4년간 스패로우 홈의 어린이 교육사업을 특별히 지원해 왔으며 거리의 어린이를 비롯한 어려운 상황의 어린이 보호를 위한 복지정책을 정부와 함께 개선해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리카 또한 아직 악몽을 모두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미래의 꿈을 물어보자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대답합니다. "제 꿈이요? 글쎄요.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지금은 동생이 이 곳에 와서 함께 사는 거. 그냥 그게 꿈이에요" 어린이들의 행복한 재잘거림과 노랫소리 가득한 스패로우 홈의 마당에서 만난 14세 소녀 나디아는 더 행복한 모습입니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모두 이겨낸 듯 공공보호시설에서 지낸 경험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합니다. (→ 유니세프 직원들을 쫓아 다니며 노래를 불러줬던 밝은 미소의 나티아. ⓒ UNICEF Georgia) "전에 있던 곳은 여기처럼 자유롭지 않았어요. 마당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선 제가 원하는 건 모두 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집처럼 자유로워요. 전 친구들과 놀거나 노래 부르는 게 좋아요. 컴퓨터도 재미있고요." ''스패로우 홈''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처음 들어온 아이들이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왜 ''스패로우''냐고 묻자 나티아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참새처럼 느끼거든요." 그리곤 이 곳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스패로우 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참새라고 불리는 새가 있어요. 머리를 가릴 지붕조차 없지만 음식을 건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죠.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아요. 원하는 곳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아무도 그들을 새장에 가둘 순 없죠.''참새의 지저귐을 닮은 나티아의 노랫소리가 마당 가득히 울려 퍼집니다.

미래의 헤어 디자이너, 토고의 코코

아프리카 서부의 기니 만 연안에 위치한 토고의 조용한 마을, 아네호에는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17세 소년, 코코가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작고 한가로운 마을이지만, 이곳에 평화가 오기까지 토고인들의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2년 전인 2005년 4월 38년간 토고를 장기 집권했던 독재자 그나싱베 에야데마 대통령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파우레 그나싱베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온 나라가 폭력 사태에 휩싸였습니다. 대를 이은 독재에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거리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했고 군대를 비롯해 집권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폭력조직들이 최루탄과 무기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약탈과 폭력이 이어졌고 이러한 과정에서 적어도 60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결국 선거결과가 발표되고 1주일 만에 1만 8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인 가나와 베냉으로 탈출했습니다. 난민의 무리 속 에는 소년 코코도 있었습니다. “폭력사태가 발생하던 날, 저는 미용실에 있었어요. 대통령 선거결과가 발표되자 마자 여기 저기서 총소리가 났어요. 집으로 가려고 미용실을 빠져 나왔더니 이미 거리에는 총을 든 사람들이 잔뜩 있었고 그들은 내 편, 네 편도 없이 아무 곳에나 총을 쏘아대고 있었어요. 마치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았죠. 무서워서 집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가족들 생각이 났지만 죽음의 두려움이 더 컸지요.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강을 헤엄쳐 건넜어요. 그리고 도망친 다른 난민들과 함께 이 곳 베냉으로 왔어요.” 베냉에는 코코처럼 부모 없이 탈출한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난민 캠프가 있습니다. “국경을 넘자 유니세프 직원들은 저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봤어요. 제가 누구이며, 왜 탈출했는지. 주소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곤 제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함께 머무를 텐트를 보여 주었어요. 저는 주소를 말하지 않았어요. 토고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거든요” 코코는 그 때부터 난민촌인 콤 캠프 (Come Camp)에 머무르며 여유로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난민 캠프에선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잘 먹고, 제가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친구들과 어울리며 잘 지냈어요. 미용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구요.” 난민캠프에 머무르는 많은 아이들이 코코와 마찬가지로 토고로 돌아가기 싫어했습니다. 유니세프 난민캠프의 직원 크리스챤 미차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던 아이들이 이 곳에서 잘 먹고, 잘 입고 편하게 지내다 보면 캠프를 떠나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유니세프는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희망을 키워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난민 캠프에서 구호품에 의존해서 계속 지내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옳지 않으니까요. 고향의 상황이 안정되면 당연히 돌아가 본연의 인생을 살아야지요” 얼마 후 코코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유니세프 직원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고향집 주소를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니세프는 수소문 끝에 코코의 가족들을 찾아 주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후 다시 미용실에서 헤어 디자이너 견습생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 코코는 캠프를 떠날 때 유니세프가 준 미용기구 세트를 보물 1호로 여깁니다. (← 손님의 머리를 만져 주고 있는 코코 / Photo credit: Lorho/UNICEF Bénin) 아네호 미용실에서 일한 지 9개월이 흐른 지금, 코코는 미용실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견습생으로 통합니다. 유니세프가 정기적으로 난민캠프 출신 아이들의 생 활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게 된 코코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건강한 소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하세요. 곧 훌륭한 헤어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구요.” 지금 토고의 작은 마을, 아네호에는 미래의 일류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코코가 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소녀 모리의 희망 일기

인도네시아 해안 지역 칼랑의 이른 아침. 열살 안팎의 어린 소녀들이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걸어갑니다. “학교에 가는 길이에요. 저는 학교 가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술 시간이 제일 기다려져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것도 즐겁고요. ” 얼마 전 칼랑에 새로 완공된 캄퐁 바로(Kampong Baro)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한 살 소녀 모리가 까르르 웃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학교 자랑을 합니다. (←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받고 있는 모리, ⓒ UNICEF Indonesia/2006/Josh Estey) 지금은 해맑게 웃고 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모리는 웃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2년 전 인도네시아 해안 지역을 휩쓸고 간 쓰나미가 모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모리가 살던 칼랑의 마을은 쓰나미 피해가 가장 컸던 수마트라의 서쪽 해안 지역입니다. 당시 이 지역 주민의 4분의 1이 생명을 잃었고, 4만 명이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모리는 순식간에 몰려온 해일로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습니다. 집과 학교, 놀이터도 잃었습니다. 사고가 있은 지 2년이 흐른 지금도 아빠는 여전히 실종된 상태입니다. 아빠 대신 생계를 떠맡게 된 스물 여섯 살의 젊은 엄마는 남의 집 빨래를 해 주고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어린 남동생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희망을 잃었던 모리가 웃음을 되찾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한 달 전 모리가 살고 있는 곳에 새 학교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Child- Friendly UNICEF School)’입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유니세프가 세워준 임시텐트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이제 지진이나 해일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니세프는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로 부서진 학교들을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이미 4개의 학교가 완공되었고, 35개교는 건설 중에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에는 튼튼한 건물뿐 아니라, 남녀별 화장실과 식수 시설도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어린이들은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텐트교실에서는 여러 학년이 같이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의 수업하는 내용이나 다른 반 아이들의 말소리가 다 들렸어요. 이제 우리 반만 따로 공부하게 되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모리는 수업시간이 더 즐겁고 집중도 잘 된다고 말합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쓰나미로 충격에 빠져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답니다.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한꺼번에 잃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학교가 복구되고, 학교 시설이 하나씩 개선되면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이제는 수업시간에도 활발하게 발표도 잘 하고, 잘 웃고, 잘 뛰어 놀고 자기 표현도 다양하게 합니다.” (← 새로 지어진 모리의 학교, ⓒ UNICEF Indonesia/2006/Josh Estey) 캄퐁 바로의 교장선생님인 무하마드 알리 씨는 덧붙입니다.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정을 밝게 만듭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가 들어서면서 동네 전체가 밝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지 우리 모두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답니다.” 칼랑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쓰나미 이후 웃음을 잃었던 마을 주민 전체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웃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밝은 미래이며,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던 부모들도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에 와본 후에는 선뜻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마을을 떠났던 교사들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 덕분에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의 학교 등록률과 출석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쓰나미의 상흔은 아직도 인도네시아 구석구석에 남아 있지만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리와 같은 어린이들이 있기에 인도네시아는 상처를 이겨내고 희망을 되찾을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운 한낮.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간 모리는 책가방을 놓고 친구들과 함께 강으로 나갑니다. 물은 모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이제 더 이상 모리는 물이 두렵지 않습니다. 수영을 하기 위해 강 속으로 철벅철벅 들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더 이상 쓰나미의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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