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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 2010.06.15
  • 조회수 : 7104

아이티 소녀 쥬디스의 꿈

  • 2010.05.25
  • 조회수 : 11425

4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 2010.04.20
  • 조회수 : 8112

세계 물의 날 ? 생명의 물을 기다리는 난민촌

  • 2010.03.16
  • 조회수 : 8733

아이티의 지진고아 프랜디

  • 2010.03.03
  • 조회수 : 12834

서로 돕는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 2010.02.01
  • 조회수 : 7343

세네갈의 어린 형제 마마두와 모사

  • 2010.01.12
  • 조회수 : 11859

지구촌 어린이 2억 명이 영양실조

  • 2009.11.30
  • 조회수 : 8605

CRC 20주년 기념 유니세프 아동권리 영화제

  • 2009.11.30
  • 조회수 : 6881

마다가스카르의 영양실조 아기 ‘시자’ 이야기

  • 2009.10.14
  • 조회수 : 16578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드에 맞서 투쟁한 소웨토 어린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아프리카연합은 1991년 이 날을 제정했습니다. 소웨토 사태는 1976년 6월 16일, 억압을 의미하는 아프리칸스(남아프리카 공용 네덜란드어) 수업을 거부하는 어린이 1만여 명이 거리로 평화행진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어린들에게 무력으로 대응했고, 무장경찰들의 최루가스와 총탄에 152명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됐습니다. 1977년까지 계속된 저항으로 약 700명의 어린이들이 희생됐고, 같은 해 6월 26일 정부는 아프리칸스 수업을 모든 흑인학교에서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지금 남아공은 월드컵 축제의 열기로 들떠 있습니다. 34년 전에 일어난 어린 학생들의 외침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불과 16km 떨어져 있지만 흑인거주지역 소웨토는 여전히 빈곤과 차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4년 전 소웨토 어린이들이 겪었던 소외와 폭력의 역사는 남아공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저는 아홉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 중에서 다섯을 잃었어요. 둘은 영양부족으로 저체중으로 태어나 며칠만에 세상을 떴고, 나머지 셋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모두 병에 걸려 죽었어요. 빨리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릴 수도 있었겠지만 먹고 살기 바빠서 병명조차 모르고 아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답니다."두 살 된 아기 바사이를 데리고 시에라리온 포트 로코 지역 로신타 마을의 소아과병원을 찾은 엄마 파트마타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슬픈 얼굴이 됩니다. 4명 남은 아이 중 바사이는 막내입니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심하고 통 먹지를 않아 먼 길을 걸어 병원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파산타는 더 이상 아이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사이가 가벼운 감기를 앓고 있으며 체중도 정상이라는 말에 파트마타의 얼굴이 금세 밝아집니다.파산타는 아이의 진료비로 약 1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파트마타의 가정에서 부담하기에 이 돈은 경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시에라리온은 세계에서 5세 미만 어린이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1천명 당 200명 이상의 어린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합니다. 병원비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병원마다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에 이러한 부담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병원에 잘 데려오지 않습니다. 그리고,이런 상황은 어린이사망률을 악화시킵니다. 병원비 부담 때문에 파트마타는 막내 바사이만을 데려왔습니다. 집에 두고온 네 살배기 루산노도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 루산노를 병원에 데려오게 될 지 기약이 없습니다.유니세프는 시에라리온 보건부 및 세계은행, 세이브더칠드런 등과 협력해 병원에서 자의로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추가비용을 폐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고, 최근 시에라리온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코로마 대통령은 임산부와 5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무료진료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정책의 실행으로 혜택을 받을 어머니와 어린이는 120만 명이나 되지만 정책이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멉니다. 파트마타는 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책은 바뀌었지만 돈이 없으면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이 이 곳 시에라리온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글) 이자 다비에스/유니세프 시에라리온사무소

아이티 소녀 쥬디스의 꿈

무너져버린 나의 세상지진이 일어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날 따라 램버트 교장선생님은 우리를 집으로 일찍 돌려보냈어요. 평소에 나는 학교 뒤뜰 청소를 하느라 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렀거든요.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학교수가 살해되었고, 폭동이 날 위험이 있다는 말을 전하며 서둘러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거리에서 꾸물거리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지요. 우리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어요. 갑자기 거리의 모든 것들이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거리를 뒤덮은 흙먼지로 우리들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변해버렸지요. 우리는 아우성 치고 비명을 지르면서 거리를 우왕좌왕 뛰어 다녔어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지요. 도착해 보니 우리집도 부서져 있었어요. 엄마는 무너진 집더미 아래 깔려 있었는데 엄마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돌들이 워낙 크고 무거워서 아빠 혼자 힘으로는 옮길 수 없었어요. 나와 동생 제퍼슨은 아빠를 도와 바위들을 치우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엄마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계속 아파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그날 밤 우리는 엄마를 땅에 묻고 말았어요.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요. 우리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어요. 그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했지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공유한 우리들은 그날 밤 거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잠이 들었지요. 엄마의 꿈엄마는 나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였어요.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었으니까요. 엄마 품에서 잠들면 모든 어려움을 잊을 수가 있었지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집도 없고 엄마도  없어요. 나의 피난처 두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삶이 눈 앞에서 무너져버렸어요. 나는 몇날 며칠을 울었어요. 때때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밤마다 엄마 꿈을 꿨어요. 엄마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여전히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어요. 나는 엄마를 자주 기억해요. 엄마와 나는 TV앞에 앉아 음악쇼를 보곤 했어요.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늘 격려해 주셨죠.엄마는 언젠가 내가 무대 위에서 서서 나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난 엄마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래요. 엄마의 꿈은 바로 나의 꿈이니까요. 지진 발생 이후, 집을 잃은 우리는 5주간 포르토프랭스를 떠나 주변의 시골마을로 갔어요. 마을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해 외로웠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엄마가 더 많이 생각났어요.  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오곤 해요.학교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포르토프랭스로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 우리는 가족과 친척들까지 모두 8명이 작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살아요. 아빠와 오빠는 마루바닥에서 자고, 나와 언니, 사촌동생 2명이 침대 두 개에서 함께 자요. 비가 오면 우리 방은 물이 새서 금세 수영장이 되어 버려요. 비닐봉지로비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죠. 그래서, 비 오는 밤에는 거의 잠을 설친답니다. 이 곳에서는 학교가 너무 멀어요. 나는 매일 2시간씩 총 6km를 걸어서 학교에 가요. 학교가 너무 멀어 다니기가 힘들지만, 엄마의 꿈을 이루려면 내가 공부를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요.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때는 작은 목 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여요. 엄마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네 자신을 위해 계속해야 해. 학교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랍니다. 나는 학교를 사랑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구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생의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아요. 나는 꿈이 아주 많아요. 엄마가 사랑했던 내 노래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지금 합창단의 일원이랍니다. 지진에 대한 노래도 작곡했어요. 많은 친구들이 지진으로 내 곁을 떠났어요. 우리 5학년 학급은 74명이었지만 지금은 32명만이 남아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친구들은 주변 나라로 피난을 갔어요. 램버트 교장선생님은 엄마가 없는 제 멘토가 되어 주셨어요. 교장선생님은 내가 학교 오기 전에 아침을 먹지 못 할까봐 걱정하세요. 선생님은 엄마 같아요. 엄마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제게 주지요. 말로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안답니다. 교장선생님은 지진에 대해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주셨어요. 나는 엄마와 친구들 이야기를 할거예요.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한 내 친구는 자신의 손을 잡고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해 얘기할 거래요.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서 로를 도와야만 해요.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아픈 상처를 서로 감싸주면서 우리는 성장해갈 거에요.

4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말라리아는 매년 1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입니다. 말라리아환자의 90%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며, 말라리아로 위협받는 나라는 약 100개국에 이릅니다. 말라리아는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살충 처리한 모기장만 사용해도 어린이사망률을 2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유니세프는 지난 2000년 10년 계획으로 WHO, UNDP 등 유엔가구들과 함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롤백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종료를 200여 일 앞둔 4월 19일 아프리카에서의 말라리아 퇴치성과를 담은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보고서에 따르면 살충처리모기장을 사용하는 인구는 2004년 30만 명에서 2009년 100만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으며, 살충처리모기장의 생산량은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약 2억 장의 살충처리 모기장을 공급받았으며, 말라리아 치료 특효약인 ACT공급량도 30배 늘었습니다.그러나 말라리아 치료를 받는 어린이비율은 34%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린 영유아는 발병 후 48시간 안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될 위험이 높지만 짐바브웨, 르완다,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말라리아치료를 제대로 받는 어린이비율은 10% 미만입니다.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필요한 모기장은 약 3억 5천만 장으로 1억 5천만 장의 모기장이 더 필요하고, ACT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행히도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으로 2004년부터 2009년 사이 국제 말라리아 기금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희망적인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라리아퇴치캠페인의 총책임자 콜 섹 박사는 말합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투자가 어린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확보된 기금은 필요한 기금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기금으로 3분마다 한 명의 어린 생명을 구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말라리아는 고질적인 풍토병입니다. 콩고에서도 말라리아 감염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키산가니 시의 한 보건소에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다급하게 뛰어옵니다. 안겨 있는 아이는 네 살바기 여자아이 세실리아. 열이 펄펄 끓고 구토와 경련을 반복합니다. 전형적인 말라리아 증상입니다. 세실리아의 엄마 루시는 매우 지쳐 보입니다. 딸이 증세를 보인 지는 한참 되었지만 먹고 사는 일이 바빠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파서 우는 딸을 돌보며 밤을 지새다가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먼 길을 걸어 병원에 올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간호사 플로렌스는 세실리아에게 약을 처방해 주고, 앞으로의 감염 예방을 위해 루시에게 살충 처리 모기장을 주었습니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5세 미만 어린이들이 한 해 동안 최소 6회씩 말라리아에 걸립니다. 해마다 18만 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말라리아로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현재 유니세프와 WHO, USAID, 유럽연합 등과 협력해 550만 개의 모기장을 콩고민주공화국 오리엔탈과 마니마 지역 180만 가구에 공급했습니다. 6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가구 당 3개의 살충처리 모기장이 무료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모기장을 공급하기 위해 화물수송기와 배, 강을 건너기 위 한 카누와 기차, 트럭,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 모든 교통수단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키산가니 시의 유니세프사무소 물류팀에서 일하는 미싱기 씨는 말합니다. "우기가 되면 물살이 거세지면 모기장 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트럭은 질퍽해진 도로에 자주 빠지고, 다리가 끊겨 모기장을 직접 머리에 이고 배달해야 하는 일도 자주 생깁니다."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모누이는 세 살바기 아들 사무엘이 한 달에 서너 번씩 말라리아에 걸린다며 기뻐서 이야기합니다."지금 사용하는 모기장은 구멍이 숭숭 뚫려 무용지물이었는데, 이렇게 안전한 새 모기장을  갖게 되어 정말 행복해요. 이젠 아이들이 말라리아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겠지요?"글: 바비안 암본고 (유니세프 콩고민주공화국사무소 공보관)

세계 물의 날 ? 생명의 물을 기다리는 난민촌

3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입니다. 지구촌에 수자원의 소중함을 알리고 물부족 현상을 경고하고자 1992년 유엔은 매년 이 날을 세계 물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와 각 나라 정부의 노력으로 전세계 87% 이상의 인구가 안전한 식수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1억 2천만 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안전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아이티, 칠레 등지에서 대지진이 잇따라 발생해 생명을 지키는 물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촌으로 모여듭니다, 위생환경열악한 난민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수인성 질병의 확산입니다 재해 속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난민촌에서 발생하는 수인성질병은 주로 오염된 물에서 기인합니다. 설사병과 콜레라, 말라리아 등은 어린이 생명을 앗아가는 주요질병으로  해마다 지구촌에서 설사병으로 사망하는 어린이 수는 185만 명, 말라리아로 죽는 어린이는 80만 명에 이릅니다. 맑은 물만으로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특히 영양과 보건상태가 취약한 난민어린이들에게 맑은 물은 생명입니다. 유니세프는 아이티를 비롯한 재해지역에 식수정화제와 수동식펌프, 물탱크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난민 어린이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샹드마 지역에는 집을 잃은 이재민  1만 5천명이 모여 지내고 있습니다. 샹드마 텐트촌의 이른 아침, 유니세프가 설치한 물탱크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10세 소년 피터슨도 동생과 함께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후 피터슨의 하루 일과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가족들이 쓸 물을 길어 나르느라 하루가 다 갑니다. 피터슨은 물을 잔뜩 길어 가족들이 사는 텐트로 갑니다. 텐트 앞에서는 엄마와 이모는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텐트에서 살아가는 가족은 모두 여덟 명입니다. 아이들이 여섯 명에 어른은 엄마와 이모 뿐입니다. 빨래감은 매일 쌓이고 물은 부족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긷느라 지치지만 그래도 피터슨은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유니세프가 난민촌에 물탱크와 식수대를 설치하기 전에는 마실 물조차 없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샹드마 난민촌 식수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은 가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줄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언제쯤 저는 학교로 돌아가게 될까요? “ 그렇게 물으면서 피터슨은 유니세프가 얼마나 난민촌에 머무를 것인지 걱정스럽게 물어봅니다. 유니세프는 피터슨과 같은 아이들이 남아 있는 한 절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티의 지진고아 프랜디

2월 22일 낮 12시. 포르토프랭스의 날씨가 유난히 덥습니다.어젯밤에도 4.7도의 여진이 4초간 발생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재앙을 겪은 아이티 사람들에겐 4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오늘  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은 까르푸 지역 고아원들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유니세프 사업팀은 고아원들을 돌아보며 지진피해 어린이들의 상태를 평가하고, 필요한 물품을 조사합니다.첫번째 방문지로 우리는 까르푸의 오다스카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의 원아 수는 지진 이 발생 하기 전엔 135명이었지만, 지진 후엔 509명으로 늘었습니다. 현재 지진으로 고아원이 붕괴됐기 때문에 학교건물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아이티 사람들처럼 건물이 아닌 거리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잡니다.이 곳에서 지진으로 한 쪽 팔을 잃은 남자아이를 만났습니다. 올해 여덟 살인 프랜디는 우리가 건네주는 막대사탕을 너무나 맛있게 먹습니다. 지진으로 집이 부서지던 순간 프랜디는 부모를 잃었고, 한 쪽 팔도 잃었습니다. 프랜디의 결에 붙어앉아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여섯 살배기 여동생 캐틀린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입니다.프랜디와 케틀린에게 다가갔을 때 오누이는 지진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어린 캐틀린은 더 불안해 보입니다. 오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다닙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프랜디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프랜디는 꿈을 말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동생 캐틀린의 손을 꼭 잡고 있을 뿐입니다.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은 아이들이 지진으로 고아가 됐는지 먼저 조사하고, 고아 명단에 등록한 후, 아동들의 모든 정보를 취합합니다.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름과 고아가 되기 전 주소, 고아가 된 당시의 상황 등을 세세하게 물어봅니다.이 곳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한순간에 부모와 형제, 친지, 집, 학교 등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고향마을도 사라지고,  친구, 가족과 나누었던 추억도 사라졌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물질적인 지원 외에 정서적인 지원도 시급히 필요합니다.아이티에서 지진으로 고아가 된 어린이 수는 10만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은 식량과 식수, 텐트 등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아픈 아이가 발생하면 유니세프 보건팀에 알려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고아원 마당 한 쪽 곁에는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지진으로 부서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기적처럼 꽃망울을 터뜨린 꽃 뒤로 ‘뚜 띠무엉 쟝드와 (TOUT TIMOUN GEN DWA)’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유니세프차량이 보입니다.  ‘뚜 띠무엉 쟝드와’는 크레올어로 ‘모든 어린이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지구촌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티 어린이들도 고유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티 어린이들도 권리를 보호받으며 행복하게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티의 꿈이자 미래입니다. 프랜디도 다시 의사의 꿈을 꿀 것입니다. 팔은 잃었지만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글> 타니아 맥브라이드 유니세프 공보관<지진고아와 미아들을 위해 일하는 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현재 유니세프는 아이티에서  어린이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해 현지의 7개 관련단체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동들을 조사해 등록서류를 만들고 가족을 찾아줍니다. 각 지역에 나가있는 단체들은 아동들의 정보를 모아 유니세프 중앙 데이터센터로 보냅니다. 유니세프는 이 리스트를 기본으로 아동들의 가족을 찾습니다. 가족을 방문해  생계능력이 있는 지 알아본 후, 가능하면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다시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동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아동의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서로 돕는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한 지 2주일. 포르토프랭스 펜티온빌 지역의 대표적인 공원 Place Boyer 는 이재민들의 텐트촌이 되었습니다. 음식과 식수, 화장실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이 곳에서 유니세프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지역 주민들과 힘을 합쳐 구호활동을 펼칩니다. 시민봉사단체인 BIC의 회원들도 그 안에 있습니다. 이 단체는 펜티온빌의 주민 부부가 만든 것입니다. 단체 사무실은 부부가 사는 집입니다. 이들 가족은 이웃주민들을 고용해 공원에 머무는 지진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식량과 식수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BIC의 운영자 마가리테 알슨은 펜티온빌을 아끼고 사랑합니다.“우리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아이티 국민이고, 우리는 이 곳 펜티온빌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 곳 사람들을 잘 알고, 그들도 우리를 잘 알아요. 지금 공원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환경은 점점 악화되는데 아이들이 그 곳에 방치되어 있답니다. 우리는 최소한 그들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페티온빌 시민들이 조직해 운영하는 BIC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페티온빌의 모든 공원에 있습니다.두 살배기 어린 여자아기 메르세나의 집도 Place Boyer공원입니다. 공원에 설치된 텐트촌 구석에서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아기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지만 기운이 없는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하루 종일 아기에게 아무 것도 먹이지 못했어요. 저는 이 곳을 떠나 친척 집으로 가고 싶어요. 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답니다." 엄마는 집이 지진으로 파괴된 직후 친구 가족과 함께 이 곳에 머물고 있었지만 친구는 아이티를 떠나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메르세나와 엄마도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여비가 없고, 앞으로도 돈이 생길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리아 다르멘디아 아동보호담당관은 말합니다."이 공원에만 273명의 어린이가 있습니다. 더 많은 어린이와 가족들이 매일 도착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재민들이 모인 상황에서 화장실과 식수 부족은 전염병의 위험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어린이가 가장 먼저 희생됩니다." 유니세프는 공원에서 사는 어린이와 가족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BIC와 함께 일합니다.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Safety Space)’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전한 공간은 전세계적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난 지역에서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음식과 물을 주고, 임시학교를 운영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또래들과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도 되어줍니다. 이 공간을 통해 어린이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유니세프는 기대합니다. 유니세프는 이미 포르토프랭스에 3군데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700명의 고아나 미아를 등록시켰습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18세 미만인 아이티에서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어린이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세네갈의 어린 형제 마마두와 모사

일곱 살 소년 마마두는 식량위기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집안에 먹을 것이 떨어졌고, 굶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마마두의 엄마 아와는 4명의 자녀와 몸이 아픈 남편, 시어머니까지 먹여 살리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하고, 거리에서 주스를 팝니다. 막내 모사를 업은 채 휴일도 없이 하루 12~14시간을 일해도 일곱 명 가족이 먹을 음식을 구할 돈을 벌기는 어렵습니다.마마두는 엄마가 일하는 식당으로 가끔 찾아가 막내 모사와 놀아 줍니다. 형이 오면 모사는 그제서야 엄마 등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아와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말합니다.“월말이 되면 정말 먹을 게 딱 떨어져요. 그러면 우리는 나무 이파리를 양념해서 배를 채우지요.” 그러면서 그녀는 팔을 뻗어 자주색 이파리가 담겨있는 단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곤 맛을 내기 위해 위해 이파리 위에 설탕을 조금 뿌립니다. 이파리 외에 아와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먹을거리는 약간의 빵 조각 뿐입니다. 38 세의 이 세네갈 여인은 식량가격 상승이 집안의 식량사정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거리에서 주스를 만들어 팔았는데 재료비가 비싸져 도저히 생산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거리에서 하루 8~10 달러를 벌었다면 이제는 4달러에 밖에 벌지 못합니다. 식당일로 받는 월급을 합쳐도 가계수입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쌀 가격은 50kg에 12,000 세파프랑에서 22,000 세파프랑으로 2배 가까이 높아졌습니다. 아이들 먹을 것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지금 아와에게 있어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픈 아이의 치료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큰 딸 파토는 석 달 전부터 기침을 심하게 했습니다. 어린 마마두는 계속 기침을 하는 누나가 안타까워 누나의 가슴도 끌어주고 등도 두들겨 주었지만 파토의 기침은 그치치 않았습니다. 한번은 심한 발작증세를 보였습니다. 보다 못한 이웃주민이 나서 파토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진단 결과 파토는 천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아와는 딸을 계속 치료받게 할 수가 없습니다. 병원비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와는 식당일을 끝내고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들어와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파리를 끓여 죽을 만들고, 얼마 남지 않은 빵을 꺼내 접시에 담습니다. 아이들 넷과 시어머니, 남편이 얼마 안 되는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먹고 나니 막상 아와가 먹을 몫은 거의 없습니다. 밤이 깊자 아와는 내일 팔 주스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마마두는 엄마 곁에서 동생 모모를 재웁니다. 잠든 동생이 귀여운지 모모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춥니다. 아와는 주전자 물이 끓는 동안 처음으로 앉아서 휴식을 취합니다. 몸은 많이 지쳤지만 아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녀의 발아래 마마두와 모사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있기에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위기를 잘 이겨낼 겁니다.” 

지구촌 어린이 2억 명이 영양실조

유니세프는 2009년 11월 11일 발표한 ‘2009 어린이 및 산모의 영양발달 경과보고서’를 통해 전세계 어린이 2억 명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5세 미만 어린이 사망원인의 3분 1을 차지하는 영양실조는 증세가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습니다. 증세가 없어 보여도 이미 심각한 위험상태이거나, 건강과 성장발달체계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경우도 있습니다. 영양실조 어린이 중 90%가 이프리카와 아시아 지역 어린이들입니다. 임신한 순간부터 만 3세까지 아동의 성장발육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시기에 영양이 부족하면 키가 자라지 않고 체중이 늘지 않을 뿐 아니라 지능이 발달되지 않아 학습능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심하면 생명을 잃게 되며,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1억 2천 9백만 명이 저체중이며, 이 중 10%는 생명이 위험할 만큼 심각한 저체중입니다. 유니세프 배너먼 총재는 보고서를 발표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영양실조는 어린이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질병을 일으키게 됩니다. 영양실조를 심하게 앓은 아이는 살아 남더라도 평생 동안 신체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능이 손상됨으로써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수입의 감소로 이어져 대대로 질병과 가난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엄마 품에 안겨 있는 생후 4개월된 아기 치템보의 얼굴은 양 볼이 움푹 꺼져 측은해 보입니다. 낡은 옷 안에서 흐느적거리는 두 팔은 앙상하게 말라 있고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커다란 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입니다.태어난 지 4개월이 되었지만 치템보의 체중은 4kg를 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템보는 라이베리아의 수많은 영양실조 어린이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라이베리아의 다섯 살 미만 어린이 중 7%가 중증영양실조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입니다.라이베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인구의 75%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갑니다. 14년간의 내전에 따른 식량 부족으로 5세 미만 어린이의 40%가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발육부진과 만성영양실조를 겪고 있습니다.2005년부터 유니세프는 라이베리아의 몬트세르라도 지역에서 5세 미만 어린이들을 위해 영양실조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치템보도 이 곳에서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일하는 소아과 의사 신시아 시아파 박사는 말합니다."치템보는 영양실조에 말라리아까지 앓고 있습니다. 이 곳을 찾아오는 영양실조 아이들 중에는 말라리아나 결핵에 걸린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의 예방접종 시스템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곳에서는 영양실조 치료식을 공급함과 동시에 질병에 대한 치료도 병행합니다. 고단위 비타민 A를 공급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고 철분제제와 구충제 등을 제공하며 손 씻기와 화장실 사용법 등 부모에 대한 위생교육도 실시합니다."혼자서 아기를 키우는 아빠 미셸은 3주일 전 영양실조로 생명이 위험했던 어린 딸을 이 센터로 데려왔습니다. 3주간의 치료 끝에 8개월된 어린 딸은 건강을 회복해 방긋방긋 웃고 있습니다. 아빠가 밝은 얼굴로 말합니다."아이가 너무 작은 데다 매일 아프고 피부가 다 벗겨져 있었는데 이제 피부도 매끈해지고 살도 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보채지 않고 잘 놀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CRC 20주년 기념 유니세프 아동권리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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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의 영양실조 아기 ‘시자’ 이야기

이제 막 2살이 된 '시자'는 중증영양실조로 판명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남편 없이 살아가는 스물 한 살의 젊은 엄마 '암빗솨'는 그동안 혼자 힘으로 살림을 꾸려왔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녀의 어머니 '테마'까지 모녀 3대가 마다가스카르 남부 삼포나 마을의 허름한 단칸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우리는 주로 카사바 잎으로 영양을 섭취하면서 살았어요. 고구마와 땅콩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나뭇가지를 모아 팔기도 했죠. 하지만 올해는 비가 적게 와서 문제들이 발생했어요. 곡물들이 서서히 말라 죽었고, 집안에 남아있던 식량은 모두 고갈되어 버렸어요. 제 영양상태가 나빠지니까 시자에게 먹일 젖도 잘 나오지 않았죠. 우리 가족 모두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어린 시자의 상태가 많이 나빠졌어요. 부종 때문에 팔다리가 많이 부어 올라서 아이가 고통스러워 했어요. 하지만 시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답니다."그렇게 말하는 암빗솨의 표정은 어둡고 힘없어 보인다. 어느 날 지역 보건요원들이 마을의 식량상황과 어린이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시자의 집을 찾았다. 그들은 시자를 본 순간 바로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라는 것을 알았고, 엄마에게 아기를 당장 보건소로 당장 데려갈 것을 권했다."저는 곧바로 보건센터로 아이를 데리고 달려갔어요. 의료요원들이 아이의 몸무게를 재보고, 상태를 보더니 영양실조로 부종이 심하다고 말했어요.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정말 겁이 났어요."암빗솨가 그 순간을 회상하며 말한다. 비록 중증영양실조로 판명되었지만, 시자는 운이 좋게도 설사병 등의 다른 합병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의사는 암빗솨에게 시자가 먹을 치료식을 주었다. 시자와 같은 영양실조 어린이가 땅콩과 기름, 비타민, 미네랄, 우유 가루, 설탕 등을 재료로 만들어진 이 치료식을 하루에 수 회 지속적으로 먹게 되면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암빗솨는 보건센터에서 시자의 영양실조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식수와 위생키트, 물통, 컵, 비누, 정화제 등이 들어 있는 위생용품키트도 제공받았다. 이 키트를 사용하면 집안의 위생환경이 개선되어 시자의 건강상태도 좋아질 것이다. 특히 어린 시자의 회복에 방해가 되는 설사병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을 막아줄 것이다."예전에는 집안에 있는 그릇이라곤 양동이 한 개와 오래된 접시 몇 개 뿐이었어요. 이제는 훨씬 청결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정의 위생상태가 좋아지면 우리 가족은 병에 잘 걸리지 않을 테고 우리 딸도 점점 더 건강해질 거에요."시자의 영양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몸무게도 이제 제 나이에 맞는 적정체중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시자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영양실조 치료가 끝난 후에도 시자는 적절한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데 식량사정이 좋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암빗솨는 말한다."시자가 건강해져서 기쁘지만 앞일이 걱정이에요. 앞으로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을 벌어야만 시자가 다시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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