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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2010.07.02

삼촌이 발다를 입양하겠다고 엄마에게 얘기를 꺼낸 건 발다가 막 네 살이 됐을 때입니다. 
발다는 세네갈 남부에서 엄마, 아빠, 여동생 콜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발다의 부모는 삼촌의 제안에 동의했고, 어린 발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삼촌은 발다를 키울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바로 발다를 다카의 마라부츠에게 보냈습니다. 마라부츠란 이슬람교 안에서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는 종교적 지도자, 교사 등을 의미합니다. 전체 인구의 94%가 이슬람교인 세네갈에서 마라부츠의 권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마라부츠 중엔 코란 학교를 운영하는 자도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도 종교학습을 위해 이 곳에 오기도 합니다. 발다의 삼촌도 수도 다카에 있는 학교 중 한 곳에 발다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발다가 간 학교의 마라부츠는 종교를 가르쳐 주는 대신 발다와 또래 아이들에게 거리로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했습니다. 발다는 번잡하고 지저분한 다카의 거리에서 빨간 깡통을 매고 몇 시간씩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해야만 했습니다. 마라부츠는 아이들에게 하루에 벌어와야 할 할당량까지 정해 주었습니다. 보통 300~500 세파프랑(1천 원 정도)였는데 행인들은 구걸하기에 너무 어린 발다를 가엾게 여겨 쉽게 돈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몫을 대부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구걸을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되는 날,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온 발다에게 마라부츠는 한 번만 더 할당량을 못 채우면 매질을 할거라며 무섭게 협박했습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발다는 마라부츠가 너무 무서웠고, 그날 밤 학교를 도망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발다의 집은 거리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돈과 음식을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 가족과 헤어진 발다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픈 적도 있었고,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지만 약을 먹거나 발라본 적은 없습니다. 상처가 나면 버려진 배터리 가루를 빻아 바르곤 했습니다. 발다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은 상처나 병을 치료하는데 그 방법이 최고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발다가 열 네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발다는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족이있는 따뜻한 가정은 아니지만 안전한 머물 곳을 찾은 것입니다. ‘어린이제국’이란 이름의 아동보호소가 바로 그 곳입니다.  

다카 시내에 있는 하얀 건물은 발다와 같이 마라부츠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에서 살아가던 어린이 28명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유니세프는 마라부츠로부터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이 다카에만 1만 명, 전국에는 10만 명이라고 추정합니다. 

“이제 다시는 거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거리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이 곳에는 비숫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 주니까 너무 좋아요.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찾게 되겠죠?”

그렇게 말하며 발다의 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맺혀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현재 세네갈에서 ‘어린이제국’ 운영자 및 다른 파트너들과 협력해 마라부츠로부터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글) 록산나 로캇 유니세프세네갈사무소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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