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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 남성과의 조혼을 강요당한 17살 소녀의 선택

2016.09.02

난민과 이민자가 될 수밖에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5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840만 명의 어린이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수치는 시리아 어린이 인구의 80%를 차지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35년간 끝나지 않는 내전과 자연재해로 인해 생존 자체가 어려워 졌으며, 경제 활동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8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내전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 중 460만 명은 어린이로 추산됩니다.

 

이라크에서는 끊이지 않는 폭력과 내전으로 1000만 명의 사람들이 이라크를 떠났습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인구의 약 절반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과반수가 북부 지역 사람들입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조혼하는 어린이가 가장 많습니다. 230만 명의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여성이 어린 시절 결혼했습니다.

 

소말리아에서는 20년 이상의 내전과 불안정 그리고 가뭄으로 490만 명의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아프리카의 가장 작은 나라인 잠비아 공화국은 장기간의 식량난에 달리고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인구는 특히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들은 난민의 길을 택했습니다. 

 

소녀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

 
17살 소녀에게 40살 남성과의 조혼 강요


2012년 12살이던 피스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나이지리아의 배냉에서 가난한 고모와 살았습니다. 고모는 피스를 40살 남자에게 시집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남자는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고 저를 그 집의 가정부로 만들었어요. 저는 고모에게 ‘그는 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고모는 제가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저를 죽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도망쳤어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고 제가 입고 있던 옷이 전부였어요.”

 

피스가 처음 도착한 곳은 나이지리아의 아가데즈로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한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밀항 브로커는 그녀를 사하라에서 리비아로 데려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막에서 죽었어요.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시신과 해골을 봤어요” 피스가 이탈리아로 가기 위한 리비아의 주요 승선지인 사브라타 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녀와 다른 사람들은 몇 주 동안 창문 없는 집에 감금되었습니다. “밀항 브로커였던 리비아 사람이 우리를 풀어주지 않았어요. 이곳은 물도 없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었고, 음식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밖에서는 총을 쏘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갇혀 있는 내내 두려움에 떨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보트에 타게 되었어요.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몇몇 사람들은 보트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었고 보트에서 졸도해서 죽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죽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고 너무 무서웠어요” 피스는 지금 망명을 기다리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쉼터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살아남는 것은 무척 힘들었어요”

 

보트를 타고 도착하는 난민들


잠비아 공화국에서 온 16살 아부바카의 미래 희망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보호자 없는 어린이를 위한 센터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긴 시간을 여행했어요. 저는 가다 멈추다 가다 멈추다를 반복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우리 가족은 고생했어요. 저는 학교에 갈 수도 없었고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는 날도 많았어요” 결국 아부바카는 유럽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그의 엄마에게 알리지 않고 길을 나섰습니다.

 

육지로 이동한 그는 세네갈, 말리, 부르키나파소, 나이지리아를 거쳐 마침내 리비아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여권 없이 돌아다녔어요. 국경을 건널 때마다 그들은 제 신분을 확인하지 않았고 그저 돈을 요구했어요” 가격은 각각 달랐지만 부르키나파소에서는 $25(USD)가량의 돈을, 말리에서는 $30(USD)의 돈을 내야 했어요. 이 돈을 벌기 위해 그는 리비아에서 몇 달을 지냈습니다. “살아남는 것은 무척 힘들었어요. 그들은 사람들을 죽였고, 저는 그곳에서 4개월가량을 버텼어요” 그는 석조 건축일과 접시 닦기를 했습니다. “$395(USD)의 돈을 벌 때까지 저는 일했어요."

 

"드디어 보트를 탈 수 있었는데, 모든 보트는 매우 위험했어요. 보트는 이민자들이 가득 타고 있어서 만원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보트를 타러 갔을 때 브로커에 의해 감금당했습니다. 도망쳐서 다시 보트에 탔고, 그때 노르웨이 군인에게 구조되었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는 떠난 지 5개월이 흘렀을 때였어요. 엄마는 제가 이탈리아에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고 엄마는 울면서 소리쳤어요. 많은 사람이 리비아로 갔고 도중에 많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제 엄마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행복함과 동시에 슬픔을 느꼈어요” 

 

수십만 명의 난민 어린이들이 유럽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과정은 죽음, 성폭력, 구금, 폭력, 강제 노동 등의 심각한 위협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 모든 어린이는 유엔의 아동권리 협약의 원칙에 따라 보호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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