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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전쟁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서 내 아들을 봤어요”

2017.05.24

‘독박 육아’, ‘슈퍼맘’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게 흘러나오는 요즘, 어머니의 강인함과  희생정신에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5월이 되었기를 바라며 전쟁터에서 홀로 2명의 어린이를 키우는 시리아인 어머니 다이마 카얏(Dima Khayat) 의 수기를 전해드립니다.


홀로 된 엄마의 희망과 공포의 순간


엄마가 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제가 받은 축복이 재앙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한 명의 엄마로서 저는 싸우고 살아남고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알레포는 제가 일하는 홈스(Homs)와 차로 4시간 떨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을 알레포에 두고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내내 아이들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합니다.


8살 딸 네할과 6살 아들 타이뮬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제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알레포의 남부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익숙해진 충돌 소리, 그리고 새벽의 폭격


우리는 익숙해진 큰 충돌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점점 나빠지고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5시, 집이 흔들리고 여자들과 어린이의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집 근처의 모스크 사원에서는 우리에게 즉시 지하로 피신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지하실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물, 전기, 음식, 연료가 부족해 다른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날 밤은 아주 더웠습니다.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50㎡ 이하의 작은 지하방으로 피신했습니다. 이 방은 작은 창문 때문에 공기조차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폭탄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창문으로 불길을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귀를 막았습니다. 


10일간의 지하실 생활, 시공간이 멈추다


잠시 동안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그 지하실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존 본능이 되살아나 “우리의 꿈과 희망, 그리고 가족을 위해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하실에서 10일을 머물렀지만, 그 시간은 굉장히 오랜 기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폭격이 멈추면 집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먹일 만한 음식들을 찾아 가져왔습니다. 작은 가스난로를 사용하여 가까스로 빵을 굽고 수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주변 이웃의 도움으로 자동차의 배터리를 지하실의 전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하실에 있는 동안 9살짜리 어린이가 엉덩이에 총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한 여성이 아름다운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기본적인 의학 경험을 가진 의료봉사자들에게 엄마들은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회복될 때까지 교대로 돌봐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작은 지하실에서 요리, 카드놀이, 수다, 노래 등 웃고 울고 모든 것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남는 일이었습니다. 

 

 
폭탄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이동하다


마침내, 우리는 탈출을 위해 폭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알레포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 상황은 굉장한 악몽이었지만 저는 울 수도 없었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강해져야 했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제 부모님의 집이 있는 알레포에 도착했습니다. 5kg이 빠졌지만, 그래도 살아있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지하실에서 태어난 금발의 아기를 그리워했습니다.


 

아픈 이들 모두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보다


저는 이 고난을 극복한 이후, 2015년 8월 유니세프에 합류했습니다. 


여름 방학 기간에 아들이 왼쪽 다리에 뜨거운 커피를 쏟았습니다. 시리아의 주말이기도 한 금요일 정오였습니다. 2도 화상을 입은 아들을 긴급히 치료해야 했으나 주변에 오가는 차가 없고, 약국은 물론 도움을 줄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날 밤, 제 아들의 비명에 제 가슴은 찢어졌습니다. 아들은 울부짖었습니다. “하느님, 제발 저를 데려가세요” 저는 어렵게 약국을 찾아서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연고를 발라주었습니다. 


아들 같은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 스텝으로


다음날, 저는 일하러 홈스(Homs) 지역에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유니세프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크로스 라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홈스 지역의 알 라스탄(Ar-Rastan) 지역에서 제 아들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한 아이가 아프고 굶주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의 아이들에게서 제 아들이 아파할 때의 모습을 보았고, 이들이 제 아들처럼 “차라리 나를 데려가 달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특히 한쪽 다리를 잃은 12살의 소년을 저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보여준 미소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어린이들의 미소는 긴 터널의 끝에서 불을 밝히는 희망의 미소입니다. 저는 이 어린이들을 시리아의 유니세프 동료들과 함께 돌볼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 프로그램 스텝으로 일하는 것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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