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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FAQ] 유니세프 Promise 링

  • 2021.01.25
  • 조회수 : 14926

천막학교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소녀 안지타가 전하는 이야기

  • 2010.08.26
  • 조회수 : 12982

아이티 지진, 그 후 6개월…

  • 2010.07.20
  • 조회수 : 9509

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 2010.07.02
  • 조회수 : 13750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 2010.06.15
  • 조회수 : 9101

아이티 소녀 쥬디스의 꿈

  • 2010.05.25
  • 조회수 : 13046

4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 2010.04.20
  • 조회수 : 9863

세계 물의 날 ? 생명의 물을 기다리는 난민촌

  • 2010.03.16
  • 조회수 : 10698

아이티의 지진고아 프랜디

  • 2010.03.03
  • 조회수 : 14541

서로 돕는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 2010.02.01
  • 조회수 : 9107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FAQ] 유니세프 Promise 링

  Q.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유니세프 For every child, Promise again 캠페인으로 참여해 주시는 정기후원자님들께 전달됩니다. 다만, 이미 유니세프 정기후원을 하고 계신 기존 후원자분들께는 캠페인 페이지 내 ‘유니세프 Promise 패키지’로 후원하시는 경우에도, 유니세프 Promise 링이 전달됩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을 여러 개 받을 수 있나요? A. 유니세프 정기후원을 진행해주시고 계신 경우, '유니세프 Promise 패키지' 후원금액 3만 원 당 유니세프 Promise 링 1개가 전달됩니다. 단, 정기후원을 하지 않으신 경우, '유니세프 Promise 패키지'를 후원해 주셔도 Promise 링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의 재질은 무엇인가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스테인리스 소재로 제작되어 알레르기 반응이 거의 없고 인체에 무해한 제품입니다. 다만 장기간 착용 시 물과 땀, 습기 등에 의해 변색되거나 스크래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의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남녀 공용 프리사이즈 오픈형으로 제작되어, 사이즈 조정이 가능합니다. 다만, 큰 힘을 가할 시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언제 배송되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첫 후원금 납입일 기준으로 발송됩니다. 상세한 발송 일정은 후원 완료 시 발송된 문자에서 확인 가능하시며, 유니세프 홈페이지(https://www.unicef.or.kr) 로그인 후 마이페이지-발송현황 메뉴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을 받을 주소를 변경하고 싶어요.  A. 주소 변경은 후원 완료 시 발송된 문자를 통해 수정 가능하시며, 유니세프 홈페이지 로그인 후 마이페이지-발송현황 메뉴에서도 수정이 가능합니다. 주소 수정은 발송 예정일 7일 전까지 가능합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어떻게 배송되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일반우편으로 발송되며, 발송 후 영업일 기준 1-2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 우편으로 발송되기에, 배송 추적이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이 배송 중 분실된 것 같습니다. A. 일반우편으로 발송되기 때문에, 간혹 배송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발송 예정일 이후 2주까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이후에도 수령하지 못하실 경우 gift.ig@unicef.or.kr 로 후원자님의 성함과 연락처를 기재하시어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Q. 반지가 파손되었어요. 반지를 다시 받을 수 있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약간의 사이즈 조절이 가능하도록 오픈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힘을 주어 변형 시에는 제품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초기 불량, 혹은 파손된 반지의 경우, 해당 반지의 사진과 후원자님의 성함/연락처/받으실 주소를 기재하여 gift.ig@unicef.or.kr 로 메일 주시면 확인 후 도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막학교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소녀 안지타가 전하는 이야기

마다가스카르의 아홉 살 소녀인 안지타는 마롤론도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지난 3월 마을을 휩쓸고간 태풍으로 교실이 사라진 뒤로는 계속 천막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 학기의 첫날입니다.  태풍으로 집을 잃다"이제 저도 3학년이 되었어요. 새 학년이 된 것은 좋지만 올해에도 천막 안에서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요. 태풍이 오기 전에는 번듯한 교실에서 공부했었거든요. 저는 태풍이 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태풍으로 집이 무너졌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요. 다행히도 태풍이 왔을 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했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은 가족은 없어요. 할아버지 집은 우리집보다 훨씬 튼튼해서 무너지진 않았지만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무서웠어요. 태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어요. 그 때 제가 본 광경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집도, 나무도 모두 태풍에 쓰러져 있었죠. 망고 열매들은 나무에서 모두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어요. 저는 재빨리 달려가 담을 수 있을 만큼 망고를 가져왔고 가족 모두가 맛있게 나눠 먹었어요."그러나 망고를 얻은 기쁨도 잠시 안지`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안지타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평평한 집터만 남아있을 뿐 지붕도 날아가고, 기둥도 뽑혀 없어진 것입니다..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못쓰게 되었죠. 접시와 냄비도 모두 사라져 밥을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옷은 모두 비에 젖어 넝마가 되었어요. 어린 제 여동생은 하염없이 울었어요. 부모님은 소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려고 서둘러 숲으로 들어가셨어요. 하지만 소들은 대부분 죽어 있었어요. 태풍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몹쓸 짓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울지 않고 용기 있게 참았어요. 유니세프가 천막학교를 만들다부서진 잔해를 모두 치운 뒤 안지타의 부모는 숲에서 가져온 나뭇가지와 대나무로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안지타는 친구들을 만나려고 학교에 갔지만 다시 찾은 학교에 안지타가 공부하던 교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학교건물이 서 있던 곳은 공터가 되어 있었고, 벽돌로 지은 단 한 개의 교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선생님들은 많은 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개 남은 교실에 대나무 기둥을 세워 교실을 나누었어요. 그러니까 소리가 섞여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나중에는 전학년이 같은 교실을 쓰면서 날짜와 시간을 구분해 수업을 받았어요. 수업시간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저는 다시 학교를 갈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그러던 중 유니세프가 어린이들을 위해 천막교실을 지어주었습니다. 비록 천막이지만 공간이 훨씬 넓어져 학년별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유니세프가 우리를 위해 천막교실을 만들어 주어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자 천막이 찢어지고 말았죠. 비 오는 날엔 구멍으로 비가 새기도 했구요. 유니세프는 곧 새 천막으로 교실을 바꿔 주었어요. 지금까지 우리 교실은 잘 버텨주고 있어요. 솔직히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너무 더워서 집중하기 어렵거든요. 더위에 못 이겨 수업을 듣다가 그대로 잠들 때도 있답니다."예쁜 교실이 많이 있는 학교, 태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학교를 꿈꾸는 안지타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더위를 견디며 천막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지진, 그 후 6개월…

아이티에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 처참하게 파괴되었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 아이티사무소 프랑소와즈 그룰루스 대표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합니다.“모든 사회기반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우려했던 대량 영양실조 사태나 큰 질병에 대한 발병률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잃은 많은 주민들이 이곳 난민촌에서 조금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안전한 식수를 마시고,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의 지원으로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는 등 유니세프와 협력단체들의 노력으로 내일을 위한 힘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아이티국제공항 근처의 난민촌에 자리잡은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UNICEF-supported ‘baby-friendly tent’)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들에게 치료와 영양 그리고 엄마와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생후 6개월까지 반드시 모유수유를 하도록 권장해 아기들의 면역력 증강과 성장을 위한 상담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5개월이 된 사브리나 미쉘(Sabrina Michel)은 지진 발생 직후에 태어났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았던 사브리나의 생모는 아이를 낳은 지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현재 사브리나는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에서 5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모인 베아트리스 테라느(Beatrice Terane)의 돌봄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베아트리스는 지진으로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녀가 다니던 섬유공장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자신의 아들과 사브리나까지 돌봐야 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어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두 아이를 기르는 거예요.”  약 2만3천명의 어머니들과 아기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고 있는 107개의 ‘아기에게 친근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신생아 3,000여 명은 이곳에서 충분한 분유를 제공받으며 오늘도 안전하고, 아늑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밖에 유니세프는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1천3백 개의 천막 임시학교를 만들었고, 추가로 2천 개를 더 마련할 예정입니다. 또 위생보호를 위해 9천 개의 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지진으로 가족들과 흩어진 아이들을 구출하는 등 아동보호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2만 3천 명의 어머니와 아기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고 있는 107개의 ‘아기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생활합니다. 그 중 많은 아기들이 사브리나처럼 지진 발생 후 태어났습니다. 아기들은 이 공간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티를 건설하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세네갈의 발다 이야기

삼촌이 발다를 입양하겠다고 엄마에게 얘기를 꺼낸 건 발다가 막 네 살이 됐을 때입니다. 발다는 세네갈 남부에서 엄마, 아빠, 여동생 콜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발다의 부모는 삼촌의 제안에 동의했고, 어린 발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그러나 삼촌은 발다를 키울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바로 발다를 다카의 마라부츠에게 보냈습니다. 마라부츠란 이슬람교 안에서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는 종교적 지도자, 교사 등을 의미합니다. 전체 인구의 94%가 이슬람교인 세네갈에서 마라부츠의 권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마라부츠 중엔 코란 학교를 운영하는 자도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도 종교학습을 위해 이 곳에 오기도 합니다. 발다의 삼촌도 수도 다카에 있는 학교 중 한 곳에 발다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발다가 간 학교의 마라부츠는 종교를 가르쳐 주는 대신 발다와 또래 아이들에게 거리로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했습니다. 발다는 번잡하고 지저분한 다카의 거리에서 빨간 깡통을 매고 몇 시간씩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해야만 했습니다. 마라부츠는 아이들에게 하루에 벌어와야 할 할당량까지 정해 주었습니다. 보통 300~500 세파프랑(1천 원 정도)였는데 행인들은 구걸하기에 너무 어린 발다를 가엾게 여겨 쉽게 돈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몫을 대부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구걸을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되는 날,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온 발다에게 마라부츠는 한 번만 더 할당량을 못 채우면 매질을 할거라며 무섭게 협박했습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발다는 마라부츠가 너무 무서웠고, 그날 밤 학교를 도망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발다의 집은 거리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돈과 음식을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 가족과 헤어진 발다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픈 적도 있었고,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지만 약을 먹거나 발라본 적은 없습니다. 상처가 나면 버려진 배터리 가루를 빻아 바르곤 했습니다. 발다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은 상처나 병을 치료하는데 그 방법이 최고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발다가 열 네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발다는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족이있는 따뜻한 가정은 아니지만 안전한 머물 곳을 찾은 것입니다. ‘어린이제국’이란 이름의 아동보호소가 바로 그 곳입니다.  다카 시내에 있는 하얀 건물은 발다와 같이 마라부츠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에서 살아가던 어린이 28명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유니세프는 마라부츠로부터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이 다카에만 1만 명, 전국에는 10만 명이라고 추정합니다. “이제 다시는 거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거리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이 곳에는 비숫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 주니까 너무 좋아요.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찾게 되겠죠?”그렇게 말하며 발다의 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맺혀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현재 세네갈에서 ‘어린이제국’ 운영자 및 다른 파트너들과 협력해 마라부츠로부터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글) 록산나 로캇 유니세프세네갈사무소 공보관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6월 16일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드에 맞서 투쟁한 소웨토 어린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아프리카연합은 1991년 이 날을 제정했습니다. 소웨토 사태는 1976년 6월 16일, 억압을 의미하는 아프리칸스(남아프리카 공용 네덜란드어) 수업을 거부하는 어린이 1만여 명이 거리로 평화행진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어린들에게 무력으로 대응했고, 무장경찰들의 최루가스와 총탄에 152명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됐습니다. 1977년까지 계속된 저항으로 약 700명의 어린이들이 희생됐고, 같은 해 6월 26일 정부는 아프리칸스 수업을 모든 흑인학교에서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지금 남아공은 월드컵 축제의 열기로 들떠 있습니다. 34년 전에 일어난 어린 학생들의 외침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불과 16km 떨어져 있지만 흑인거주지역 소웨토는 여전히 빈곤과 차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4년 전 소웨토 어린이들이 겪었던 소외와 폭력의 역사는 남아공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저는 아홉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 중에서 다섯을 잃었어요. 둘은 영양부족으로 저체중으로 태어나 며칠만에 세상을 떴고, 나머지 셋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모두 병에 걸려 죽었어요. 빨리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릴 수도 있었겠지만 먹고 살기 바빠서 병명조차 모르고 아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답니다."두 살 된 아기 바사이를 데리고 시에라리온 포트 로코 지역 로신타 마을의 소아과병원을 찾은 엄마 파트마타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슬픈 얼굴이 됩니다. 4명 남은 아이 중 바사이는 막내입니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심하고 통 먹지를 않아 먼 길을 걸어 병원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파산타는 더 이상 아이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사이가 가벼운 감기를 앓고 있으며 체중도 정상이라는 말에 파트마타의 얼굴이 금세 밝아집니다.파산타는 아이의 진료비로 약 1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파트마타의 가정에서 부담하기에 이 돈은 경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시에라리온은 세계에서 5세 미만 어린이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1천명 당 200명 이상의 어린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합니다. 병원비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병원마다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에 이러한 부담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병원에 잘 데려오지 않습니다. 그리고,이런 상황은 어린이사망률을 악화시킵니다. 병원비 부담 때문에 파트마타는 막내 바사이만을 데려왔습니다. 집에 두고온 네 살배기 루산노도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 루산노를 병원에 데려오게 될 지 기약이 없습니다.유니세프는 시에라리온 보건부 및 세계은행, 세이브더칠드런 등과 협력해 병원에서 자의로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추가비용을 폐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고, 최근 시에라리온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코로마 대통령은 임산부와 5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무료진료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정책의 실행으로 혜택을 받을 어머니와 어린이는 120만 명이나 되지만 정책이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멉니다. 파트마타는 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책은 바뀌었지만 돈이 없으면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이 이 곳 시에라리온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글) 이자 다비에스/유니세프 시에라리온사무소

아이티 소녀 쥬디스의 꿈

무너져버린 나의 세상지진이 일어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날 따라 램버트 교장선생님은 우리를 집으로 일찍 돌려보냈어요. 평소에 나는 학교 뒤뜰 청소를 하느라 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렀거든요.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학교수가 살해되었고, 폭동이 날 위험이 있다는 말을 전하며 서둘러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거리에서 꾸물거리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지요. 우리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어요. 갑자기 거리의 모든 것들이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거리를 뒤덮은 흙먼지로 우리들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변해버렸지요. 우리는 아우성 치고 비명을 지르면서 거리를 우왕좌왕 뛰어 다녔어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지요. 도착해 보니 우리집도 부서져 있었어요. 엄마는 무너진 집더미 아래 깔려 있었는데 엄마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돌들이 워낙 크고 무거워서 아빠 혼자 힘으로는 옮길 수 없었어요. 나와 동생 제퍼슨은 아빠를 도와 바위들을 치우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엄마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계속 아파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그날 밤 우리는 엄마를 땅에 묻고 말았어요.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요. 우리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어요. 그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했지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공유한 우리들은 그날 밤 거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잠이 들었지요. 엄마의 꿈엄마는 나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였어요.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었으니까요. 엄마 품에서 잠들면 모든 어려움을 잊을 수가 있었지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집도 없고 엄마도  없어요. 나의 피난처 두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삶이 눈 앞에서 무너져버렸어요. 나는 몇날 며칠을 울었어요. 때때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밤마다 엄마 꿈을 꿨어요. 엄마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여전히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어요. 나는 엄마를 자주 기억해요. 엄마와 나는 TV앞에 앉아 음악쇼를 보곤 했어요.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늘 격려해 주셨죠.엄마는 언젠가 내가 무대 위에서 서서 나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난 엄마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래요. 엄마의 꿈은 바로 나의 꿈이니까요. 지진 발생 이후, 집을 잃은 우리는 5주간 포르토프랭스를 떠나 주변의 시골마을로 갔어요. 마을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해 외로웠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엄마가 더 많이 생각났어요.  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오곤 해요.학교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포르토프랭스로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 우리는 가족과 친척들까지 모두 8명이 작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살아요. 아빠와 오빠는 마루바닥에서 자고, 나와 언니, 사촌동생 2명이 침대 두 개에서 함께 자요. 비가 오면 우리 방은 물이 새서 금세 수영장이 되어 버려요. 비닐봉지로비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죠. 그래서, 비 오는 밤에는 거의 잠을 설친답니다. 이 곳에서는 학교가 너무 멀어요. 나는 매일 2시간씩 총 6km를 걸어서 학교에 가요. 학교가 너무 멀어 다니기가 힘들지만, 엄마의 꿈을 이루려면 내가 공부를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요.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때는 작은 목 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여요. 엄마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네 자신을 위해 계속해야 해. 학교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랍니다. 나는 학교를 사랑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구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생의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아요. 나는 꿈이 아주 많아요. 엄마가 사랑했던 내 노래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지금 합창단의 일원이랍니다. 지진에 대한 노래도 작곡했어요. 많은 친구들이 지진으로 내 곁을 떠났어요. 우리 5학년 학급은 74명이었지만 지금은 32명만이 남아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친구들은 주변 나라로 피난을 갔어요. 램버트 교장선생님은 엄마가 없는 제 멘토가 되어 주셨어요. 교장선생님은 내가 학교 오기 전에 아침을 먹지 못 할까봐 걱정하세요. 선생님은 엄마 같아요. 엄마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제게 주지요. 말로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안답니다. 교장선생님은 지진에 대해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주셨어요. 나는 엄마와 친구들 이야기를 할거예요.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한 내 친구는 자신의 손을 잡고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해 얘기할 거래요.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서 로를 도와야만 해요.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아픈 상처를 서로 감싸주면서 우리는 성장해갈 거에요.

4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말라리아는 매년 1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입니다. 말라리아환자의 90%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며, 말라리아로 위협받는 나라는 약 100개국에 이릅니다. 말라리아는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살충 처리한 모기장만 사용해도 어린이사망률을 2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유니세프는 지난 2000년 10년 계획으로 WHO, UNDP 등 유엔가구들과 함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롤백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종료를 200여 일 앞둔 4월 19일 아프리카에서의 말라리아 퇴치성과를 담은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보고서에 따르면 살충처리모기장을 사용하는 인구는 2004년 30만 명에서 2009년 100만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으며, 살충처리모기장의 생산량은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약 2억 장의 살충처리 모기장을 공급받았으며, 말라리아 치료 특효약인 ACT공급량도 30배 늘었습니다.그러나 말라리아 치료를 받는 어린이비율은 34%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린 영유아는 발병 후 48시간 안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될 위험이 높지만 짐바브웨, 르완다,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말라리아치료를 제대로 받는 어린이비율은 10% 미만입니다.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필요한 모기장은 약 3억 5천만 장으로 1억 5천만 장의 모기장이 더 필요하고, ACT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행히도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으로 2004년부터 2009년 사이 국제 말라리아 기금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희망적인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라리아퇴치캠페인의 총책임자 콜 섹 박사는 말합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투자가 어린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확보된 기금은 필요한 기금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기금으로 3분마다 한 명의 어린 생명을 구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말라리아는 고질적인 풍토병입니다. 콩고에서도 말라리아 감염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키산가니 시의 한 보건소에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다급하게 뛰어옵니다. 안겨 있는 아이는 네 살바기 여자아이 세실리아. 열이 펄펄 끓고 구토와 경련을 반복합니다. 전형적인 말라리아 증상입니다. 세실리아의 엄마 루시는 매우 지쳐 보입니다. 딸이 증세를 보인 지는 한참 되었지만 먹고 사는 일이 바빠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파서 우는 딸을 돌보며 밤을 지새다가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먼 길을 걸어 병원에 올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간호사 플로렌스는 세실리아에게 약을 처방해 주고, 앞으로의 감염 예방을 위해 루시에게 살충 처리 모기장을 주었습니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5세 미만 어린이들이 한 해 동안 최소 6회씩 말라리아에 걸립니다. 해마다 18만 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말라리아로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현재 유니세프와 WHO, USAID, 유럽연합 등과 협력해 550만 개의 모기장을 콩고민주공화국 오리엔탈과 마니마 지역 180만 가구에 공급했습니다. 6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가구 당 3개의 살충처리 모기장이 무료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모기장을 공급하기 위해 화물수송기와 배, 강을 건너기 위 한 카누와 기차, 트럭,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 모든 교통수단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키산가니 시의 유니세프사무소 물류팀에서 일하는 미싱기 씨는 말합니다. "우기가 되면 물살이 거세지면 모기장 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트럭은 질퍽해진 도로에 자주 빠지고, 다리가 끊겨 모기장을 직접 머리에 이고 배달해야 하는 일도 자주 생깁니다."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모누이는 세 살바기 아들 사무엘이 한 달에 서너 번씩 말라리아에 걸린다며 기뻐서 이야기합니다."지금 사용하는 모기장은 구멍이 숭숭 뚫려 무용지물이었는데, 이렇게 안전한 새 모기장을  갖게 되어 정말 행복해요. 이젠 아이들이 말라리아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겠지요?"글: 바비안 암본고 (유니세프 콩고민주공화국사무소 공보관)

세계 물의 날 ? 생명의 물을 기다리는 난민촌

3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입니다. 지구촌에 수자원의 소중함을 알리고 물부족 현상을 경고하고자 1992년 유엔은 매년 이 날을 세계 물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와 각 나라 정부의 노력으로 전세계 87% 이상의 인구가 안전한 식수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1억 2천만 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안전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아이티, 칠레 등지에서 대지진이 잇따라 발생해 생명을 지키는 물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촌으로 모여듭니다, 위생환경열악한 난민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수인성 질병의 확산입니다 재해 속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난민촌에서 발생하는 수인성질병은 주로 오염된 물에서 기인합니다. 설사병과 콜레라, 말라리아 등은 어린이 생명을 앗아가는 주요질병으로  해마다 지구촌에서 설사병으로 사망하는 어린이 수는 185만 명, 말라리아로 죽는 어린이는 80만 명에 이릅니다. 맑은 물만으로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특히 영양과 보건상태가 취약한 난민어린이들에게 맑은 물은 생명입니다. 유니세프는 아이티를 비롯한 재해지역에 식수정화제와 수동식펌프, 물탱크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난민 어린이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샹드마 지역에는 집을 잃은 이재민  1만 5천명이 모여 지내고 있습니다. 샹드마 텐트촌의 이른 아침, 유니세프가 설치한 물탱크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10세 소년 피터슨도 동생과 함께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후 피터슨의 하루 일과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가족들이 쓸 물을 길어 나르느라 하루가 다 갑니다. 피터슨은 물을 잔뜩 길어 가족들이 사는 텐트로 갑니다. 텐트 앞에서는 엄마와 이모는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텐트에서 살아가는 가족은 모두 여덟 명입니다. 아이들이 여섯 명에 어른은 엄마와 이모 뿐입니다. 빨래감은 매일 쌓이고 물은 부족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긷느라 지치지만 그래도 피터슨은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유니세프가 난민촌에 물탱크와 식수대를 설치하기 전에는 마실 물조차 없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샹드마 난민촌 식수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은 가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줄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언제쯤 저는 학교로 돌아가게 될까요? “ 그렇게 물으면서 피터슨은 유니세프가 얼마나 난민촌에 머무를 것인지 걱정스럽게 물어봅니다. 유니세프는 피터슨과 같은 아이들이 남아 있는 한 절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티의 지진고아 프랜디

2월 22일 낮 12시. 포르토프랭스의 날씨가 유난히 덥습니다.어젯밤에도 4.7도의 여진이 4초간 발생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재앙을 겪은 아이티 사람들에겐 4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오늘  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은 까르푸 지역 고아원들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유니세프 사업팀은 고아원들을 돌아보며 지진피해 어린이들의 상태를 평가하고, 필요한 물품을 조사합니다.첫번째 방문지로 우리는 까르푸의 오다스카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의 원아 수는 지진 이 발생 하기 전엔 135명이었지만, 지진 후엔 509명으로 늘었습니다. 현재 지진으로 고아원이 붕괴됐기 때문에 학교건물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아이티 사람들처럼 건물이 아닌 거리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잡니다.이 곳에서 지진으로 한 쪽 팔을 잃은 남자아이를 만났습니다. 올해 여덟 살인 프랜디는 우리가 건네주는 막대사탕을 너무나 맛있게 먹습니다. 지진으로 집이 부서지던 순간 프랜디는 부모를 잃었고, 한 쪽 팔도 잃었습니다. 프랜디의 결에 붙어앉아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여섯 살배기 여동생 캐틀린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입니다.프랜디와 케틀린에게 다가갔을 때 오누이는 지진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어린 캐틀린은 더 불안해 보입니다. 오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다닙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프랜디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프랜디는 꿈을 말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동생 캐틀린의 손을 꼭 잡고 있을 뿐입니다.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은 아이들이 지진으로 고아가 됐는지 먼저 조사하고, 고아 명단에 등록한 후, 아동들의 모든 정보를 취합합니다.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름과 고아가 되기 전 주소, 고아가 된 당시의 상황 등을 세세하게 물어봅니다.이 곳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한순간에 부모와 형제, 친지, 집, 학교 등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고향마을도 사라지고,  친구, 가족과 나누었던 추억도 사라졌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물질적인 지원 외에 정서적인 지원도 시급히 필요합니다.아이티에서 지진으로 고아가 된 어린이 수는 10만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은 식량과 식수, 텐트 등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아픈 아이가 발생하면 유니세프 보건팀에 알려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고아원 마당 한 쪽 곁에는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지진으로 부서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기적처럼 꽃망울을 터뜨린 꽃 뒤로 ‘뚜 띠무엉 쟝드와 (TOUT TIMOUN GEN DWA)’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유니세프차량이 보입니다.  ‘뚜 띠무엉 쟝드와’는 크레올어로 ‘모든 어린이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지구촌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티 어린이들도 고유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티 어린이들도 권리를 보호받으며 행복하게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티의 꿈이자 미래입니다. 프랜디도 다시 의사의 꿈을 꿀 것입니다. 팔은 잃었지만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글> 타니아 맥브라이드 유니세프 공보관<지진고아와 미아들을 위해 일하는 유니세프 아동보호사업팀>현재 유니세프는 아이티에서  어린이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해 현지의 7개 관련단체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동들을 조사해 등록서류를 만들고 가족을 찾아줍니다. 각 지역에 나가있는 단체들은 아동들의 정보를 모아 유니세프 중앙 데이터센터로 보냅니다. 유니세프는 이 리스트를 기본으로 아동들의 가족을 찾습니다. 가족을 방문해  생계능력이 있는 지 알아본 후, 가능하면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다시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동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아동의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서로 돕는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한 지 2주일. 포르토프랭스 펜티온빌 지역의 대표적인 공원 Place Boyer 는 이재민들의 텐트촌이 되었습니다. 음식과 식수, 화장실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이 곳에서 유니세프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지역 주민들과 힘을 합쳐 구호활동을 펼칩니다. 시민봉사단체인 BIC의 회원들도 그 안에 있습니다. 이 단체는 펜티온빌의 주민 부부가 만든 것입니다. 단체 사무실은 부부가 사는 집입니다. 이들 가족은 이웃주민들을 고용해 공원에 머무는 지진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식량과 식수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BIC의 운영자 마가리테 알슨은 펜티온빌을 아끼고 사랑합니다.“우리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아이티 국민이고, 우리는 이 곳 펜티온빌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 곳 사람들을 잘 알고, 그들도 우리를 잘 알아요. 지금 공원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환경은 점점 악화되는데 아이들이 그 곳에 방치되어 있답니다. 우리는 최소한 그들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페티온빌 시민들이 조직해 운영하는 BIC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페티온빌의 모든 공원에 있습니다.두 살배기 어린 여자아기 메르세나의 집도 Place Boyer공원입니다. 공원에 설치된 텐트촌 구석에서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아기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지만 기운이 없는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하루 종일 아기에게 아무 것도 먹이지 못했어요. 저는 이 곳을 떠나 친척 집으로 가고 싶어요. 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답니다." 엄마는 집이 지진으로 파괴된 직후 친구 가족과 함께 이 곳에 머물고 있었지만 친구는 아이티를 떠나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메르세나와 엄마도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여비가 없고, 앞으로도 돈이 생길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리아 다르멘디아 아동보호담당관은 말합니다."이 공원에만 273명의 어린이가 있습니다. 더 많은 어린이와 가족들이 매일 도착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재민들이 모인 상황에서 화장실과 식수 부족은 전염병의 위험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어린이가 가장 먼저 희생됩니다." 유니세프는 공원에서 사는 어린이와 가족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BIC와 함께 일합니다.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Safety Space)’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전한 공간은 전세계적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난 지역에서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음식과 물을 주고, 임시학교를 운영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또래들과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도 되어줍니다. 이 공간을 통해 어린이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유니세프는 기대합니다. 유니세프는 이미 포르토프랭스에 3군데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700명의 고아나 미아를 등록시켰습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18세 미만인 아이티에서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어린이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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